사랑의 밥심으로 다시 공부하게 되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이 난장판이었다. 집에 가구가 다 없어졌다. 너무 황당하였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세히 살펴보니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지고 오셨던 가구만 다 없어진 것이었다. 여덟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들어오셨던 새어머니는 그렇게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집을 나가 버리셨다. 그래도 남동생에게는 귀띔을 했었나 보다. 밥을 사주면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한창 사춘기였던 나와는 사이가 안 좋아서 나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나가버리신 것이다.
새어머니가 싫었다. 항상 밖으로만 나돌아 다니시고 집에는 잘 안 계셨다. 새어머니의 모든 것이 싫었다. 그래서 새어머니가 없어졌으면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막상 이렇게 진짜로 새어머니가 나가버리시니 내 발밑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한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모두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이 불행이 나로 인해서 시작된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 숨고 싶었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옷장이었다. 옷장 속에 들어가서 깜깜해질 때까지 혼자 울고 또 울었다.
퇴근해서 돌아온 아빠가 나를 찾았다.
"00야"
"00야"
나는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방에 들어온 아빠는 옷장 문을 열었고 그 안에 숨어있는 나를 보고는 꺼이꺼이 우시면서 내 방을 나가셨다. 나는 그때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내 가슴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아빠와 새어머니는 자주 다투셨다. 어떤 때는 안방 문을 잠그고 투닥투닥 몸싸움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부부란 전생의 원수가 만나서 같이 산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게 되었다. 부부란 원래 그렇게 사이가 안 좋고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와 남편의 모습도 그때의 아빠와 새어머니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나는 부모님의 사시는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버림받기 전에 내가 먼저 남편이라는 존재를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내 인생에서 밀어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나의 상처 받은 내면 아이는 지금까지도 계속 울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날은 밝았고 학교는 가야 했다. 부엌에서 아빠가 뭘 하고 계셨다. 가만히 가서 보니 아빠가 내 도시락을 싸고 계셨다. 세상에.... 삼대독자이신 아빠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도 처음 봤는데 내 도시락을 싸고 계셨던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아니, 이 맛은! 돼지고기를 볶아주셨는데 내가 먹어본 고기반찬 중에 제일 맛있었다. 아빠는 요리에 숨은 재주꾼이었던 것이다. 아빠가 싸준 맛있는 도시락을 먹으면서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면서 자꾸만 목이 매였다.
그때부터 성적은 계속 끝없는 나락 속으로 추락하였다. 수업 시간에도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왔다.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고도 선생님은 왜 그러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버스에서도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학교를 다닌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덜너덜 거리는 삶을 계속 살고 있자니 아빠가 나를 불렀다.
"너 어떤 삶을 살래? 지금이 니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아느냐? 너 공부 계속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공부에 손을 놓은 나에게 아빠는 타이르기도 하고 협박도 하면서 공부하라고 채근하셨다.
그러다 덜컥 고3이 되었다. 이러다가는 정말이지 대학도 못 갈 것 같았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다. 일요일도 그 먼 학교를 한 시간씩 버스를 타고 가서 텅 빈 교실에서 문제집을 풀었다. 여름에는 더운 교실에서 세숫대야에 발을 담가놓고 공부를 했다. 엉덩이에 땀띠도 났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래도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고 고3 때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다 아빠의 도시락 때문이었다. 그 맛있었던 도시락! 그 따뜻한 밥심으로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락에 담긴 아빠의 사랑으로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