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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집사 Nov 07. 2024

친구들의 정치학 강의

얼마 전 한 친구가 밥 한번 먹자고 해 친구 넷이 모였다. 장가 못 간 친구들을 가끔씩 위로해 주는 고마운 친구다. 그날은 여느 때와는 달리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소위 불금인지라 우리가 가고자 한 식당은 만석에 대기줄까지 있어 미련을 버리고 한산해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식사를 하며 반주를 곁들이니 약간 취기들이 올라 그간 쌓였든 얘기들을 쏟아놓는다.

그중 하나 얼마 남지 않은 선거가 식탁에 올랐다. 우리를 초대해 준 친구가 신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다며 무척이나 흡족해했다. 이렇게 시작된 얘기는 우리를 젊은 대학시절로 이끌었다. 한국에는 진정한 좌파가 없다는 어느 교수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고 민주주의의 퇴보라며 개탄하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우고 대학 초년생 때 잠시 본 두세 권의 이념서적들을 짜깁기하며 귀를 세우고 들었다. 한편으로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념 논쟁의 끝자락을 경험한 세대다. 그 끝에는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있었다. 이러한 논쟁에 한 번도 가담하지 않고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했던 내가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우파. 좌파. 모든 이념들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장점과 단점.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이론이나 제도는 없고 설사 당시로는 최선의 이념이라도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지 못하면 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경제도 보완을 거쳐 혼합경제체제나 수정자본주의를 거친 것처럼 나름 최적의 제도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지금은 삼권 분립을 기반으로 한 대의민주주의가  최선의 제도로 평가받고 있지만 간접민주주의의 보완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열린 자세와 논의를 가로막는 걸림돌인 분단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들 중 가장 마음씨 좋고 주머니 사정이 그나마 제일 나은 친구가 계산했다. 예전에는 한때 주당이었지만 술을 끊은 친구가 집집마다 데려다주었다. 오는 길에 아직 여운이 남은 친구가 아쉬워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도 장단을 맞춰 준다.

집 앞에서 내리며 스치는 생각이다.

우리는 정치적 담론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우리의 열정과 사랑.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공감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지나고 나니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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