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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짜장 라면은 그만, 오늘은 내가 '찐 요리사'

by 데일리타임즈W
어릴 때 다양한 꿈이 있었다. 멋진 뮤지컬 배우 아니면 자유로운 예술가? 살다 보니 회사와 집만 오가는 그런 삶이 되었다. 회사가 무료해질 때쯤 뭘 하면 재밌을까 고민하다가 직장인 뮤지컬 동아리를 시작했다. 그 후로 직업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 꿨던 꿈을 소소하게 이룰 수 있는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뭐 하고 놀까?' 아니 '뭘 하면 더 재미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30대 대한민국 평범 직장남의 더 즐거운 횰로 도전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요즘 들어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매 순간 쏟아지는 TV, SNS의 음식∙먹방 콘텐츠는 이런 사실을 입증해 준다. 생활에 꼭 필요한 3가지 요소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의식주’를 이야기한다. 생존을 위해 단순히 먹기만 했던 옛날과는 판이 달라졌다. 나에게 음식은 능동적이기보단 수동적인 개념에 가까웠다. 부모님이 해주시거나, 식당에서 먹는 게 대부분이었기에 집에서는 양 조절, 식당에서는 메뉴 고르기 정도로 소극적 선택이 전부였다. 그러다 갑자기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일단 등록부터 했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이유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결론낸 이유는 이렇다. 현재는 부모님 집과 매우 가까이 살기에 끼니를 해결하기 쉽지만, 언젠간 힘들 수 있다. ‘요섹남’처럼 요리하는 모습이 이성, 혹은 미래에 배우자에게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먼 훗날 해외에서 한 달 살아보기를 실천해 보고픈 마음이라 요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사 먹지 않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요리를 배워야 할 이유를 대자면 10가지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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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남자는 일명 ‘요섹남’으로 불리며 하나의 엄청난 경쟁력이 되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모르면 검색부터 하는 게 인지상정. 초록 창부터 소셜 플랫폼까지 훑어보고 날짜와 시간이 맞는 클래스가 있다면 바로 신청하리라 마음먹었다. 시작은 가볍게 원데이 클래스부터 해보기로 정했다.


2749_3770_494.jpg 종로에 있는 한식조리학원에서 난생처음 배워보는 요리 원데이 클래스. / 사진= 박현호 기자

항상 뭘 배우려 장소를 고를 때면 종로부터 떠올린다. 예전에 영어학원, 스페인어 학원을 다녀서 그런지 종로 하면 뭐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강남에 더 많은 학원이 있을 순 있겠지만 거리가 멀어서 일단 패스, 동네 근처로 하자니 뭔가 배우러 가는 ‘맛’이 느껴지지 않으니 이 역시도 패스다. 검색해보니 H요리학원 종로지점에서는 시간대가 맞는 원데이 클래스가 있었다. 메뉴가 내 맘에 쏙 들지 않았지만 다른 조건들이 맞아서 신청하고 참여하기로 했다.


드디어 클래스 날이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여름의 싱그러움과 함께 종로가 주는 특유의 색채와 향기를 느끼며 요리학원으로 향했다. 난생처음 요리학원에 들어가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아 드디어 나도 요리에 세계에 빠지는구나!’, ‘나도 요섹남이 될 수 있구나!’라고 김칫국을 미리 한 사발 먹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배움을 맞이했다. 실습실에 들어가 조금 기다리자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선생님과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데 더 이상 수강생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1:1 수업이 되어버렸다. 아뿔싸! 전날 5명이 등록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다른 시간이었던 것. 이왕 이렇게 된 거 질문도 많이 할 수 있고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요리 수업에 임했다.


오늘의 메뉴는 북엇국과 닭 가슴살 흑임자 냉채. 선생님께서 오늘 배울 요리에 대한 레시피 종이를 나눠 주신다. 평생 요리를 해본 적이 손에 꼽기에 내심 걱정도 됐다.


2749_3771_4929.jpg 비주얼은 달랐지만 꽤 괜찮은 맛이었던 북엇국과 닭 가슴살 흑임자 냉채. / 사진=박현호 기자

선생님을 따라 요리를 시작했다. 월계수 잎을 넣고 닭 가슴살을 데치고, 소스를 만들고, 오이를 썰고 너무 분주해서 정신이 없었을뿐더러 칼질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속으로 그간 나에게 음식을 만들어 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심지어 군대의 취사병까지도 말이다. 아직은 서툴러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요리사란 직업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선생님의 채썰기와 나의 채썰기의 완성도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동일 재료와 용량으로 요리를 했기에 요리 후 맛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 흑임자 소스로 대망의 요리 수업이 끝났다.


예전에 몹시 우울한 날에는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 먹으라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요리를 해서 먹는 행위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행동이자, 만족감을 높여 좋은 기분을 북돋아 준다고 한다. 요리가 끝난 후 정성껏 만든 요리를 시식하는데 이게 뭐라고 성취감이 생긴다. 열심히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니 2시간 동안 ‘썰고’ ‘볶고’ ‘지지고’ 하면서 움직였던 피로한 팔과 다리의 뻐근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고생해서 완성한 요리 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선생님께 동의를 구해 요리 사진을 찍으며 원데이 클래스를 뿌듯하게 마무리했다.


요리가 끝나고 친구와 회를 먹는데 꿀맛이다. 요리를 배우고 나니 주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 보인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음식인데 직접 체험해보니 새삼 나를 위해 요리해 줬던 사람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요즘 나에게 “주말에 뭐 하면 재밌을까?”를 물어보는 사람이 종종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축제, 영화나 공연 관람 등 일상의 즐길 거리와 거리를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코로나 시국에 즐길 거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나를 위한 요리를 배우고 만드는 경험을 추천해 주고 싶다. 물론 나도 요리를 직접 배워 본 게 처음이었지만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썩 괜찮았던 경험이다. 코로나로 우울하다면, 회사 일에 지치고 힘들다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면 오늘 나를 위한 한 끼를 정성스레 만들어 나에게 대접해 보는 건 어떨까?



데일리타임즈W 박현호 기자 dtnew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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