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회사에서 외근 가던 중에 인사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어떤 일보다 시급하니 당장 들어오라기에 약속을 접고 회사로 돌아갔다. 회의실에 들어서니 인사팀장을 비롯해서 사업부장, 몇몇 팀장, 모 차장이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업부장이 말했다.
“김 차장, 내일까지 그룹 우수사원 선발 때 모 차장이 발표할 5분짜리 PT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연유는 이랬다. 그룹에서 모든 계열사를 상대로 매년 우수사원을 서너 명 뽑는데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최초로 후보가 나왔다. 10여 개 계열사의 1만 명이 넘는 직원 중에 매년 서너 명만 뽑기 때문에 우수사원으로 뽑히는 것은 회사의 영광이기도 했다.
선발은 그룹 주요 계열사 CFO가 모인 심의위원회에서 5분 발표와 5분 질의응답으로 결정한다. 여기서 5분 발표할 PT 자료를 내가 주도해서 만들라는 얘기였다. 대략 두 배수가 발표하니 사실상 발표가 선발을 좌우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오기 전까지 발표 컨셉은 성과였다. 어차피 우수사원이란 것은 우수한 성과를 낸 사원이니 성과를 어필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에 토를 달았다. 우수사원 후보로 뽑힌 것 자체가 이미 성과를 인정받은 것인데 최종 선발 발표에 또 성과를 얘기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나는 CFO 대여섯 명이 모인 심사위원회를 떠올려 보라고 했다. 그들은 우수사원 후보에게서 어떤 얘기를 듣고 싶을까? 과연 큰 폭의 매출 향상이나 놀라운 영업 실적을 듣고 싶을까?
나는 숫자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룹 우수사원을 선정하는 이유는 정말 성과가 우수한 사원에게 포상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우수사원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노하우나 위기를 극복한 경험, 성과를 높인 영업 방법이나 고객을 만족시키는 태도 같은 것을 찾아내서 그룹 임직원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 더 크다.
몇 시간의 회의 끝에 우리는 발표 컨셉을 ‘극복’으로 정했다. 그리고 모 차장이 이만큼의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한 방법을 3개의 에피소드로 정리하였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①누구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 ②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노력과 끈질긴 집념, ③상황의 역전과 그로 인해 창출한 새로운 성과로 구성하였다.
우리는 심사위원 중 한 명의 CFO에게 초안을 발표했다. 그는 구성이 매우 좋다고 하면서도 ‘가슴을 찌르는 무언가 하나’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3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하나의 에피소드만 남길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에피소드를 찾을 것인지 밤새 고민했다.
결국 우리는 가슴을 찌르는 무언가 하나는 모 차장에게 맡기자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우리는 발표 자료에 더 이상 가슴을 찌르는 무언가를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핵심이 되는 장표, 감동을 주는 장표, 결정적인 장표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발표자의 역할이라고 결론 내렸다. 아무리 좋은 대본도 연출과 배우가 따라주지 않으면 어떤 감동도 전하지 못한다. 반대로 아무리 허술한 대본이라도 배우가 진심 어린 연기를 하면 우리는 감동한다. 모 차장은 평소 자신이 고객에게 스타일대로 담담하게 발표했다. 그리고 우리 회사 최초의 그룹 우수사원이 되었다.
검토자는 항상 보고서에 모든 것을 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최종 의사결정권자 대부분은 보고서만 보고 결정하지 않는다. 만약 보고서만 보고 모든 결정을 내린다면 회의란 것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보고를 회의에서 하는 이유는 보고자를 직접 보기 위해서다. 전자결재가 활성화되었다고 해도 중요한 건은 반드시 대면 보고를 받고 결재한다. 보고서는 보고자의 의사소통 도구의 하나일 뿐이지 보고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러니 보고서에 모든 것을 집어넣으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부하직원에게 간결한 보고서, 쉬운 보고서, 핵심만 있는 보고서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간결하고 쉽고 핵심 위주로 보고하지 못한다. 어쩌면 검토자 스스로가 제대로 보고할 능력이 없어서 보고서에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슴을 찌르는 무언가 하나는 보고서가 아니라 보고자에게서 찾아야 한다.
<팀장을 위한 보고서 검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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