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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와이 Apr 12. 2019

사망회의

의사들의 발표자료를 통한 추모의식

 오후 회진이 끝난 저녁시간이 되었다. 밖은 노을이 피고 있었다. 느슨한 하늘과 달리 강당의 공기는 고동도의 긴장감으로 무거웠다. 흰 까마귀들이 각자의 회진을 마치고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오늘의 발표자는 이들을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오늘의 이벤트는 '모털리티 컨퍼런스(Mortality Conference)’. 문자 그대로 ‘죽음의 회의’가 열리는 날, 발표자가 맡았던 환자의 죽음에 대해 대한 의학적으로 고찰해보고, 더 나은 치료가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고자 하는 회의. 발표자 입장에서는 매우 긴장되는 의식이다. 죽은 환자를 되살려, 아직 살아 있을 때로 돌아가, 다른 치료를 했다면 더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함께 고민하는 쓰디쓴 시간이기 때문이다. 말이 '함께 고민'이지 당시 주치의인 발표자의 비판이 주된 내용이다. 이 복기는 물론 의사 개인과, 나아가서는 의학 전체의 발전이라는 숭고한 주제를 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모든 발전은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을 주는 이는 (자기 세부과에서 뼈가 굵은) 선배와 동료 의사들이다. 이들의 흰 가운은 오늘따라 세탁이 더 잘 된 것인지 어두운 강당 안에서 하얗게 발광해 채웠다. 발표자는 오늘 의학의 고수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린치를 당할 수도 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쓰러지는 정도에서만 끝나면 사실 다행이다. 다른 많은 레지던트들처럼 첫 한방에 KO 당하고, 그 다음 까마귀 선생님들이 죽은 육체를 뜯어먹게 할 수도 있다. 이 사망회의는 중환자실 주치의를 맡았다면 무조건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다. 이 의식을 통해 그는 전문의에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제물이 되는 고통의 대가다.


 발표자는 자료를 빠르게 눈으로 다시 훑었다. 각과 교수, 전임의, 전공의, 전문간호사, 학생들이 온몸이 굳어가는 그를 감정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의 시간 때문에 어깨가 저려올 지경이었지만, 벗어버리고 싶다면 발표를 시작해야 했다. 이 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결단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온 몸이 굳어가는 발표자를 감정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photo by: markus-spiske on unsplash


 "아···네···흠흠. 그럼 시간이 되었으니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내과 2년차 아무개입니다."


 싸구려 마이크는 눈치 없게도 그의 별 것 없는 첫마디를 가지고 강당 전체를 흔들었다. 닥터 아무개는 목구멍에 이상한 느낌이 간지러워 목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는 평소 기침하는 버릇도 없었다. 극도의 긴장에 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왠지 오늘 발표 내내 이 기분 나쁜 이물감이 그를 괴롭힐 것 같았다.


 "환자는 76세 남자, 한 모씨입니다. 당뇨 고혈압 만성 신질환 과거력이 있고 말초동맥 폐쇄증으로 본원 흉부외과에서 혈관성형술, 스텐트 삽입술 작년 시행한 바 있습니다. 내원 1주 전부터 발생한 전신무력감으로 일반병실 입원한 자입니다."


 발표자, 그러니까 당시 중환자실 주치의는 환자를 '입원한 자'라고 낮춰 부르면서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환자는 유쾌한 할아버지였다. 그는 몸 상태가 나빠져도 아침 회진 때 농담을 할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사망회의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또는 망자라고 치켜세워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곳은 의학적인 사실을 논하는 곳이지 환자와의 마음의 교류를 떠들 만한 장은 아니었다.

 

 환자는 지병이 많은 사람이었다. 당뇨병을 오래 앓았고, 갖고 있던 모든 지병들은 당뇨와 관련 있었다. 당뇨는 혈액 내 당이 체내 인슐린으로 잘 조절되지 않는 병이다. 당이 높으면 혈관의 염증은 심해지고, 전신의 혈관이 수십 년간 서서히 망가진다. 전신 혈관의 만성염증은 몸의 기능을 크게 떨어뜨린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매일 피곤하고, 회복도 느리고, 무엇보다 후진 혈관은 혈전으로 잘 막힌다. 인체에서 혈전은 부지불식간에 생기기도 하고 흡수되어 사라지기도 하는데, 당뇨병 환자들의 작은 혈관은 이 과정에서 기능을 완전히 잃기도 한다. 이 작은 혈관들은 보통 말초, 몸 끝에 위치해 있다. 망막혈관이 망가져 앞이 안 보이면 당뇨망막병증, 신장혈관이 좋지 않으면 당뇨성 만성신부전증으로 평생 투석을 하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 환자는 둘 다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입원 당시 발 사진입니다. 당뇨족부병으로 괴사가 심한 상태로 정형외과에서는 절단술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만성신부전에 급성 병증이 겹쳐 크레아티닌이 베이스 3mg/dL에서 8mg/dL까지 뜨고 소변도 나오지 않아, 정맥 정주 항생제 사용하면서 중환자실 입실하여 CRRT(Continuous renal replacement therapy: 지속성신대체요법) 시작하였습니다."


 어두운 강당 전면에 검게 썩은 발 사진이 비춰졌다. 곳곳에서 작은 탄식들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의사가 경험이 많아도 끔찍한 광경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 듯했다. 주치의는 말을 이어갔다.


 "환자가 처음 입원했던 것은 중환자실에만 있는 CRRT를 위해서였습니다. 일반 투석으로 전환하게 되면 병실 전원을 고려하고 있던 차,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혈압 그래프가 떴다. 평균 100mmHg 정도를 유지하던 수축기 혈압이 80 정도, 한 번씩은 60 까지도 급락했다. 혈압이 떨어져 전신 기관에 적절한 관류를 시키지 못하면 이를 '쇼크'라 한다. 쇼크를 한 번 맞으면 전신에 강펀치를 동시다발적으로 허용하는 것과 같다. 쇼크 상태로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주치의는 처음 수액을 때려 붓다가, 이내 투석하는 환자임을 깨닫고 승압제를 달기로 했다. 혈압 하락은 그걸로 멈췄다. 하지만 이대로 충분하겠는가? 아니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쇼크의 원인은 크게 다섯이다. 심인성, 패혈성, 저혈량성, 신경성, 아나필락시스. 이 중 임상적으로 환자는 심인성, 패혈성 둘이 의심되었다. 둘 중 하나일 수도, 둘 다 일 수도 있었다.

 

 심인성이라 한다면 심근경색의 가능성이 있었다. 심근경색은 많은 경우 환자가 가슴통증을 호소한다. 이 환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숨은 심근경색일 수도 있다. 놓쳐서는 안 된다. 주치의는 당시 자기가 고려한 모든 체크포인트를 하나하나 짚어 갔다. 심전도는? 거울상변화(Reciprocal change)처럼 보이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확실하지는 않았다. 여러 번 검사해도 비슷했다. 애매하다. 또 다른 지표는? 심근 지표는 2시간에 한 번씩 추적을 했는데도 더 오르지 않는 양상이었다. 그래, 이젠 안심해도 되려나. “이 정도 확인해 보고 심인성 가능성은 어느 정도는 배제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주치의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제 패혈성 쇼크 하나만 남았다. 실제로 쇼크는 패혈성 쇼크가 가장 흔하다. 썩을 패(敗), 썩은 피가 전신을 돈다는 의미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항생제다. 어떤 항생제를 적절히 잘 쓸 것인가? 최선의 근거는 임상적으로 어느 부위를 통해 균이 들어왔느냐를 따져야 한다. 이 환자는 약간의 폐렴과 족부 감염이 있었다. 주치의는 두루두루 균을 잘 죽이면서도 강력한 광범위 항생제를 선택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던 중 쇼크가 발생한 것이다. 지금 쓰는 항생제가 잘 안 듣는 것일 수도 있다. 발의 상처는 썩은 부위 위 쪽으로 빨갛게 변하고 있었다. 균이 올라오고 있는 듯 보였다. 주치의는 당장 더 강력한 제한 항생제로 등급을 올렸다. 환자의 전반적 상태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쇼크가 발생한 때부터 환자는 이런저런 증상을 호소했다. 배 아프고 물변 보고 종일 잠만 자고······. 하지만 주치의는 패혈성 쇼크와 큰 관계없어 보이는 이 증세들까지 고려하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런저런 증상 치료만 이뤄졌다.

 

 입원 10일 차.

 매일 복통을 호소하던 환자가 오늘따라 더 아프다 했다. 저녁 7시였다. 주치의는 신환 인계를 받던 중이었다. 아마도 미약한 장염, 하루 세 번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었다. 주치의는 추가 투약하고 지켜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트라마돌 정주 한 번 더." 말하고 하던 일을 했다.

 

 그날 밤, 환자는 트라마돌 주사에도 복통이 나아지지 않는다 호소했다. 물변도 그 날 따라 심했다. 환자가 다 버려 놓은 시트에 간호사들이 불평했을 가능성이 높다. 간호사가 힘들면 아무래도 의사에게도 전화가 많이 간다. 의사는 문제 해결도 하고 원인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이쯤 되면 계속되는 전화에 주치의가 지쳐 버렸을 가능성도 높다. 어쨌든 그는 문제 해결할 의지를 가진 성실한 의사였다. 기록에 따르면 오후 10시경, 간호사들이 환자의 변을 치우고 있었고, 그가 환자 진찰을 위해 중환자실로 왔다. 벌써 다섯 번 째나 되는 진찰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못 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거 혈변 아닌가요?"

 

 하지만 색이 명확하지 않았다. 거무죽죽하긴 했지만 일견 똥 색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돌려봐도 애매했다. 감별을 위해 과산화수소를 뿌려도 거품이 명확하지 않고, 냄새까지 맡아봤지만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혈변이 맞다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징조다.  별 것 없이 쉬이 생각했다가는 자칫 별 일, 심한 경우 환자를 잃는 경우도 생긴다. 주치의는 기분 나쁜 답답함을 느꼈다. 혈변 검사를 처방했지만 결과는 내일이나 되어야 나올 것이었다.

 

 그때였다. 또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환자의 정신상태도 흐려졌다. 이젠 정말 응급상황이 되었다. 주치의의 마음이 급해졌다. 수액도 붓고 승압제도 적용해 봤지만 효과는 적었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등 응급검사들이 처방되었다. 엑스레이 상 뿌옇게 물이 심장 주변으로 차 있었다. 환자는 원래 심기능이 나쁜 자였다. 심부전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심장이 멈춰 버릴 것 같았다. 주치의는 심폐소생술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란해졌다. 그는 환자의 침대 머리맡에 서서 한참을 지켜보더니, 간호사를 보고 말했다.


 "보호자에게 전화해야겠어요. 오늘 밤 일 생길 수도 있고, 심폐소생술 할 수도 있다고."

 "선생님. 이 환자 투석까지만 허용하는 DNR(Do not resuscitate: 불필요한 연명치료 거부 환자)잖아요."

 "아, DNR······."


 DNR환자가 중환자실에 자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DNR이라면 가슴압박, 기관삽관은 하지 말아 달란 이야기로 중환자실 입실 2순위 환자다. 그럼에도 여기 있는 이유는, 단지 간호인력이 많은 곳에서 열심히 보기 위해서였다. 보호자가 DNR을 요청한 이유는 당뇨를 오래 앓아 합병증으로 족부 절단해서 거동이 불편하고, 가끔은 치매 증상도 보이는 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치의는 이제 더 심란해졌다. 뭐 하나 해보지 못하고 당직 때 돌아가시게 할 수도 있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보호자를 호출했다. 보호자는 다시 한번 DNR에 동의함을 명확히 했다. 그의 의사로서 역할은 강제로 끝났다. 혈액검사를 하니 산성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진행형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새벽 2시, 환자 사망하였습니다."


 주치의는 다시 발표자로 돌아와 애써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보호자 앞에서 선언했던 그 말이었다. 벌써 여러 번 되새김한 말이지만, 아직도 쓴 맛이 가시질 않았다.

 

 이제 발표가 끝났다. '그럼 질문을 받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 관객 속 손 하나가 번쩍 들렸다. 무섭기로 유명한 내과 교수였다.


 

'질문을 받겠다.' 고도 안 했는데 질문하는 손 하나가 번쩍 들렸다.

photo by: marcos-luiz-photograph on unsplash


 "전공의 선생. 발표가 어째서 그 따위인가요. 그래서 왜 환자가 죽었다는 거죠?"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원인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복통과 혈변이 있었던 것을 보면 색전증으로 인한 괴사 가능성도 있고, 복통이 심근경색의 증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환자는 지속적으로 복통을 호소했다는데, 심근경색을 놓친 것은 아닌가요?"

 "아시다시피 복통이 비특이적 증세이기도 하고 이벤트 당시 최초에 촬영한 심전도나 심근 지표상 심근경색 가능성은 여러모로 떨어져 보였습니다."

 "처음 것 말고 다음 경과 본 결과는?"

 "네······. 실은 그다음 결과는··· 가능성이 떨어져 보여서······."

 "심근경색 가능성을 알고도 안 봤다는 거군. 선생, 그렇게 자신 있나?"

 "죄송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손이 들렸다.


 "선생. 복통을 입원 당시부터 호소했다고 했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 진단명을 세워 봤나요?"

 "복부 엑스레이도 그렇고, 장음도 떨어져 있고 마비성 장폐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까 환자가 물변 봤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지금 선생 무슨 말하는지 알고 있는 거죠? 마비성 장폐색 때 물변 보는 사람이 흔한가요?"

 "아뇨······. 아닙니다."

 "그래서 의증이 뭔가요?"

 "네······. 마비성······."

 "아니, 무슨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고 있어. 선생, 모털리티가 장난이야?"


 주치의가 띵한 머리를 부여잡는 동안 또 다른 손이 들렸다. 그는 숫제 반말로 포문을 열었다.


 "혈관이 안 좋은 사람인데 너무 쉽게 심근경색을 배제한 게 아닌가 하는데."

 "······."

 "대답 좀 해 보세요. 쇼크가 있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건 아닌지?"

 "네··· 저는 패혈성 쇼크라고 생각······."

 "그렇다고 그렇게 거칠게 배제해 버려도 되는 건가? 심도자술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이게, 혈압이 좀 불안정해서······."

 "곧 안정화되었잖아. 그동안 심전도도 안 찍어 봤네. 심근 지표도 안 보고."

 "패혈증 가능성이 더 높아 보여서······."

 "겹칠 가능성도 있잖아."

 "네,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죄송합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강당 여기저기서 계속 손이 들렸다.


 "헤파린이라도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통증 조절이 안 되었는데도 왜 투약을 고수했지?"

 "감염 루트를 더 면밀히 볼 수는 없었는지?"

 "미리 대변검사를 왜 나가지 않았지?"

 "CT 같은 영상검사를 고려해 보지 않은 이유는?"

 "노티(상급자에게 환자상태 정보보고)가 정확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속적 물변이 실혈과 관련 있을 거란 생각을 왜 못 했나?"

 

 쏟아지는 공격에 몸 곳곳에서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는 구 부정히 몸을 숙이고 날카로운 질문을 종이에 적느라 여념 없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환자가 살기 위해 죽음과 싸웠듯, 그 역시 자신의 미숙함을 이기기 위해 싸웠다. 혹독한 수련 과정은 그를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새끼의사는 성장하는 것이었다. 환자의 죽음을 기리며 더 큰 의사가 되기 위해.

 

 질문자 이외의 관객들은 주치의를 위해 침묵을 지켰다. 덕분에 그의 발전을 위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사실 주치의는 지금 질타를 가장한 박수를 받는 중이었다. 두려움과 피로를 이기고 최선을 다한 그의 싸움이 다음번엔 더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분위기가 충만했다. 관객 모두가 자기 환자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 쓰라린 기억, 잊고 싶은 실책, 일부는 꿈에 나타날지도 몰랐다. 그들은 주치의를 보며 과거의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젊은 내가 더 실력 있었다면, ' '오만했던 내 지식이 더 유연했더라면, ' '미숙한 내가 더 노련했더라면, ' 돌릴 수 없는 시간을 희생해 얻은 고통의 전리품을 젊은 의사에게 넘겨주는 일, 이것이 제자를 위한 그들의 방법이었다.

 

 밖은 어두워지고 '죽음의 회의'가 끝나가고 있었다. 주치의의 치료에 대한 평가로 시끌한 반면, 전면 슬라이드에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란 문장이 고요히 오래 걸려 있었다. 주치의도 그 자리에 서서 십 수 분이나 서서 베테랑들의 폭격을 버텨 냈다. 자신을 비판하는 그들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어 보였다. 모두가 제자를 위한 사랑으로 각자의 날 세운 질문을 가져왔을 뿐이고, 그 역시 스승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 회의를 버틴다고 그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선 그 자리는 큰 의사가 되기 위한 발판임은 확실했다. 타인의 질타로 엉망이 된 치료력을 정리하고 나면 그는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설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안도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몇 개월 전 가 버린 환자이지만, 마침내 온전히 자기 안에서 보내드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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