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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와이 Apr 05. 2019

의사는 신이 아니에요

 네······. 의사 하면서 뭐가 제일 힘드냐고요. 글쎄요. 한 마디로 정하긴 어렵지만 물어 보신 김에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일단, 의사 간호사 모두 일하는 정신적 피로가 굉장하죠. 남의 힘든 얘기 듣고 사는 직업이 쉬울 리가 없습니다. 어떤 선배는 회진 돌러 가면서 "아유, 이제 우리 찡찡이들 보러 가야지." 하던데요, 그만큼 의료인들에게 하소연 들어주기가 스트레스가 아닌가,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익숙해집니다. 신규 간호사든 새끼 의사든 시간이 지나면 다들 대인관계 능력이 굉장한 수준에 이릅니다. 그 많은 호소와 불만을 다 들어가며 그럭저럭 잘 살아 가요. 초년생일 때에는 환자 하나하나를 감정을 다 쏟아 돌봤을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그 대신 자기 안에서 무한의 샘을 찾아 내 환자에게 끝없이 공감을 줘도 마르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애초에 자기를 지키려고 만든 능력이겠지만 뭐, 그게 중요하겠어요? 결국엔 환자에게 좋은 일이라면 다 좋은 거다―. 그게 이 바닥 룰입니다. 그리고 자기도 한 단계 올라선 거고요.

 요즘엔 또 '감정 노동자'라는 멋진 지칭어가 있더라고요. 거 어쩌면 그렇게 말을 기막히게 잘 만들어 내는지. 그래요. 감정 노동자 맞죠. 그런데 너무 자기중심적인 말이긴 합니다. 환자의 감정 때문에 내 감정이 영향받는다, 이런 말 아니겠어요? 사실 우리는 환자에게 마음의 안위에 집중하지 않거든요.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죠. 의료인이라면 일단 병. 병을 고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감정은 사실 나중 문제예요. 이 사람의 감정···이란 놈까지 잘 다룰 줄 아는 의료인은 소위 '전인치료'를 한다고 주위에서 추켜 세워 줍니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아 정신과는 마음의 병 다루는 데 아니냐고요? 그러네요, 그러네요. 방금 드린 말씀은 정신과는 빼고 생각하시죠. 정식 명칭은 정신건강의학과죠? 하여튼, 정신과도 다른 과처럼 약을 많이 쓰는 과이긴 하지만 상담치료도 많이 하니까요. 저는 사실 많은 사람이 정신과 의사를 만나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현실은 그렇지 않죠. 정신과 진료 권유받으면 미친 사람 취급한다고 기분 상해하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단의 동일성에서 벗어난 삶을 매우 두려워하니까요. 남이 아는 이슈 다 알아야 하고, 유행 타는 옷 한 벌은 갖고 있어야 하고 이런 것 말입니다. 스스로 억압 많이 하잖아요.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어요.

 무슨 얘기 하다 말았죠? 아, 환자의 감정. 많은 의사들이 힘들어하는 문제 맞습니다. 가만 보면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는데요. 아시다시피 의대 오는 친구들 대부분이 과학 수학 같은 이공계 과목들이 우수한 경우고, 소위 말해 '과학자 마인드'가 충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병태생리입니다. 정말 우수한 친구들이 많아요. 이야기해 보면 친구랑 노는 것보다 공부가 더 좋다고 하는 특이한 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은 그 '감정'을 갖고 있잖아요. 사람은 존엄하다, 환자는 감정이 있다, 이들은 병을 가진 숙주 이상의 것이다··· 이런 말들 많이 하죠.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은 '의과학'보다는 '의업'으로 불립니다. 존엄한 인간이 가진 약점은 물론 유한성이 있는 신체겠지요. 이걸 인문학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인문학이라고 하면, 인문학과 의과학 둘 사이 균형을 잡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방금 신체의 유한성이 약점이라고 말했는데요. 환자의 약점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전문적으로 치료하기에 의사는 윤리적으로 고려할 일이 참 많습니다. "이 약 많이들 쓰지만, 지금 쓰면 절대 안 돼. 죽을 수도 있어." "지금 누가 봐도 죽을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별 것 아니요. 포기하긴 너무 일러." 환자를 둘러싼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이 우리 전문가들에게는 있습니다. 따라서 보호자가 원한다고 그대로 갈 건 아닙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옷을 고른다고 한다면, 고객이 이 옷 입고 싶다고 들고 와도 전문가는 "아니에요. 당신은 여기 걸린 옷이 훨씬 더 어울립니다."하고 최고의 선택을 이끌 역할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게 우리 직업의 특성입니다. 인간의 몸의 타임 테이블을 이해하고 거시적으로 볼 수 있는 점. 병의 코스를 예측하고 최선을 알고 있는 점. 그래서 자기를 전문가라고 부르기에 스스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 보면 자아가 비대해지게 됩니다. "제 목숨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리 열 번만 들어보세요. 당연히 내가 굉장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이런 경험은 사람을 자만하게 만듭니다. 감사받을 행동을 한 사람인데, 겸손해지려면 오히려 역(逆)-엑트로피를 가야 하는 거죠. 그렇게 살다 보면 가끔은 이런 생각도 무의식에 깔리게 됩니다. '나는 사실 전지전능하지 않을까?'

 어? 지금 제 말 듣고 웃으시는데 이게 진짜 이렇다니까요. 자기가 신인 줄 알아요. 아니 물론 의식적으로는 나도 몸이 있고, 사람인 거 알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무의식을 증명할 수 있냐고요? 좋지만 어려운 질문이군요. 제가 정확한 답은 좀 어려워요. 정신과적인 이야기라 말이죠. 여하간 이건 그럼 넘어갑시다. 어쨌든 많이들 그런 심리가 있어요, 제가 볼 때는요.

 이런 말도 많이 들리거든요. 보호자들한테서 "당신이 이 치료도 하고 저 치료도 하자고 시켜서 했는데, 왜 못 살리냐?"이런 질문이 날아와요. 종일 환자 생각만 하고 치료한 의사 입장에선 이런 항의 들으면 울컥합니다. 그래서 감정 실어 답 하기도 하죠. "의사는 신이 아니에요!" 얼핏 당연한 말을 하는 것 같죠? 제 생각엔, 이 의사는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는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리고 실력 있는 의사일 확률이 높습니다. 자기 치료에 자신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앞에 약간 생략된 게 있어요. "의사인 저를 전지전능한 신이라 느끼실 수 있겠지만, 신이 아닙니다."


보호자의 항의를 들은 의사는 울컥해 말한다. "의사는 신이 아니에요!"

Photo by Stephanie Klepacki on Unsplash


 그런데 환자 입장에서 들으면 약간 황당할 수도 있어요. '그럼 당연히 신이 아니지. 시건방진 놈!’ 하고요. 사실 내가 신처럼 느껴지는 기분은 그 길을 가 본 의사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내 행위 하나에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면서 내 커다란 힘을 느끼는 거죠. 요즘 유행하는 히어로 영화에 주인공이 처음 초능력을 얻었을 때의 그 감정선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자기 놀라운 힘에 놀라기도 하지만 두려움도 같이 느낍니다. 이런 대사도 있잖아요. 스파이더맨이었던가요. '큰 힘에는 큰 의무가 따른다.' 의사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의사들이 윤리 문제만 나오면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겁니다. 남의 목숨을 쉽게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처음 질문이 뭐였죠? 아! 언제 제일 힘드냐······.

 글쎄요. 역시 교감이 안 되는 게 제일 힘들죠. 말하다 보니 생각이 드는 게, 심리적으로 하나는 반인반신 다른 쪽은 인간인데 대화가 잘 안 되는 게 당연하겠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열심히 해 봐야지. 소통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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