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어: 오토마타 리뷰
게임명: 니어: 오토마타
제작사: 스퀘어 에닉스, 플래티넘 게임즈
출시일: 2017.04.27
'니어: 오토마타'의 가장 큰 특징은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다. 표면적으로는 인류가 달로 도피한 뒤, 기계 생명체와 안드로이드들이 지구를 두고 전쟁을 벌이는 단순한 SF 전쟁극처럼 보인다. 그러나 플레이를 이어가며 드러나는 것은 인간은 이미 오래전에 멸망했으며, 안드로이드와 기계 생명체 모두 인간이 남긴 잔해 위에서 끝없는 순환을 이어간다는 냉혹한 진실이다.
플레이어는 2B, 9S, A2라는 세 인물을 통해 서사의 다층적인 면모를 경험한다. 2B는 규율과 의무를 상징하는 병사이지만, 사실은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임무 속에서 끊임없이 억눌린 인간성을 가진 존재다. 9S는 호기심과 지적 욕망을 대표하지만, 그 탐구심은 결국 인간 멸망의 진실과 2B의 반복된 죽음을 마주하면서 집착과 파멸로 변한다. A2는 반역자로 낙인찍힌 인물이지만, 실은 끊임없는 전투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짊어진 인물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게임은 단순히 ‘누구와 싸울 것인가’의 질문을 넘어서, ‘왜 싸우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다회차 구조는 서사를 전개하는 핵심 장치다. 플레이어는 같은 세계를 반복해서 탐험하지만, 회차가 바뀔 때마다 숨겨진 진실, 다른 시점, 그리고 서사의 비극적 층위가 드러난다. 이는 보통의 RPG에서 반복을 ‘노가다’로 느끼게 하는 것과 달리, 반복 자체를 서사의 일부로 변환시킨 기묘한 체험이다.
니어: 오토마타의 무대는 인간이 사라진 뒤의 지구다. 그러나 그 폐허는 단순한 파괴의 잔해가 아니라, 기묘하게도 숭고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무너진 빌딩 위에 뿌리내린 거대한 나무, 사막에 파묻힌 과거의 문명, 녹슨 공장 지대, 그리고 한때 문명의 상징이었을 유원지가 기계 생명체들의 축제 공간으로 변모한 풍경은 '사라진 인간성'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연출의 가장 독창적인 지점은 장르적 전환이다. 기본적으로는 3D 액션 RPG지만 특정 구간에서는 탑다운 슈팅, 횡스크롤 액션, 텍스트 어드벤처로 전환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변주가 아니라, 세계와 내러티브를 표현하는 메타포로 작동한다. 예컨대 9S가 해킹을 시도할 때 슈팅 게임 화면으로 바뀌는 연출은 ‘디지털 세계 속에 잠입한다’는 서사를 체험적으로 전달한다. 이런 급작스러운 시점 전환은 몰입을 해치는 대신 오히려 게임의 실험적 성격을 강화하며 '게임은 반드시 하나의 장르일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각적 완성도만큼이나 음악 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사운드트랙은 니어: 오토마타를 단순한 게임에서 예술적 체험으로 끌어올린다. ‘Weight of the World’, ‘City Ruins’, ‘Amusement Park’ 같은 대표 곡은 절망과 희망, 고독과 연대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언어가 섞여 이해 불가능한 듯 들리는 가사는 ‘미래의 잔해 위에 남겨진 목소리’라는 세계관과 맞물린다. 이 음악들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직접적으로 흔드는 서사적 장치로 작동한다.
전투 시스템은 화려하고 속도감 있는 액션으로 구성된다. 빠른 회피, 경쾌한 콤보, 무기 전환, 서포트 드론의 활용은 플레이어에게 끊임없는 리듬감을 제공한다. 특히 ‘완벽 회피 후 카운터 공격’ 같은 액션 요소는 전투의 긴장과 쾌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그러나 니어: 오토마타의 게임성은 단순한 전투에서 끝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반복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는 경험’ 자체가 서사의 일부로 편입된다. 반복 전투와 수많은 희생은 곧 “이 싸움은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이는 전형적인 RPG의 ‘성장’이라는 보상 구조와 의도적으로 충돌하며, 플레이어가 성취와 허무를 동시에 경험하게 만든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엔딩 구조는 게임적 실험의 정점이다. 단순한 결말 선택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행동과 반복 속에서 서사가 나뉘고, 마지막에는 플레이어 자신이 ‘다른 플레이어를 돕기 위해 저장 데이터를 포기할 것인가’라는 선택을 마주한다. 이 장치는 게임을 단순한 오락 매체에서 벗어나 플레이어의 윤리적 선택을 요구하는 철학적 매체로 끌어올린다.
니어: 오토마타는 명백히 ‘게임과 예술’이라는 화두를 강화한 작품이다. 서사, 연출, 음악, 전투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총체적으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의 부재 속에서 인간성을 찾는 안드로이드의 여정은, 오히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더 강렬하게 묻는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 퀘스트, 비교적 단순한 맵 디자인, 일부 지루한 수집 요소는 몰입을 방해한다. 특히 서브 퀘스트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경우가 많지만, 기계적 진행 방식 때문에 ‘철학적 깊이’와 ‘게임플레이의 재미’ 사이에 괴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점들은 작품의 실험성과 메시지 앞에서 ‘의도된 불편함’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니어: 오토마타는 단순히 잘 만든 액션 RPG가 아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은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반복, 선택, 희생, 허무라는 철학적 주제를 게임적 체험으로 승화시켰으며, 마지막 순간에는 플레이어 스스로 ‘게임 너머의 윤리적 결단’을 내리도록 요구한다.
니어: 오토마타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걸작이다. 요코 타로와 플래티넘게임즈가 합작한 이 실험은, 플레이어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잔향을 남기며, 현대 게임사에서 가장 강렬한 철학적 체험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