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하데스타운을 보내며
10년 전으로 돌아가기
vs
10년 후로 점프하기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분명 전자를 선택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왠지 더 슬기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멋지고 근사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본능적으로 후회를 잘 한다.
99%를 훌륭하게 해낸 성과를 두고도, 굳이 아쉽고 부족한 1%의 영역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자책했다.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는데.
그런 사람이라서 그럴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는 매번 내게 말을 많이 걸어오는 이야기였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힘겹게 아내를 구하러 간 오르페우스, 그는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를 힘겹게 설득한 끝에 뒤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을 걸고 아내를 구한다. 하지만 지상 세계에 거의 다 왔을 즈음, 부족한 자기 확신과 의심으로 인해 결국 뒤를 돌아보고 다시 아내를 잃어버린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후회의 뮤지컬이다.
추위와 배고픔에서 벗어나려 하데스타운에서 영혼을 팔게 된 에우리디케의 후회, 아내의 외침을 듣지 못해 아내를 잃어버린 오르페우스의 후회, 왜곡된 사랑의 방식을 후회하며 다음 가을을 기약하는 하데스의 후회까지. 바로 지금 여기를 살자고 제안하는 페르세포네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에게 후회의 순간들이 가득 얼룩져 있다.
나 역시 컴컴한 이불 속에서 후회하느라 많은 밤을 까먹곤 했다. 세상은 넓고 나는 먼지만큼이나 작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그런데도 내 세상은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이불만큼의 세상으로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 꽁꽁 몸을 감춘 채 많은 밤 괴로웠다. 매일 밤 후회를 하는 내가 밉고 못나 보여서 아예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한 적도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후회할 일도 없을 테니까, 그저 맑은 하늘과 평탄한 길을 누리며 가만히 있는 삶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자욱하게 쌓여가는 후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노래를 부르고, 또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라는 말을 건넨다.
중요한 건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거라고,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는 게 중요하다고.
뮤지컬 하데스타운과 관련된 얘기를 좀 더 나눠보자면, 2021년 하데스타운을 처음 봤을 때 당시 나는 안정적이지만 어딘가에 몸이 매인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일터에서 꾸역꾸역 시간을 채우고, 타박타박 돈을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4년, 매일매일이 불안하지만 행복의 채도가 높은 덕업 일치의 프리랜서가 됐다. 자유롭게 나의 시간을 채우지만, 어딘가 늘 텅 비어 있는 잔고를 바라보는 그런 프리랜서.
일에는 두 가지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금전적 보상이나 사회적 위치 같은 외재적 동기와 개인의 호기심과 흥미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내재적 동기.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된 나의 경우, 외재적 동기는 다소 부족했지만 내재적 동기가 강하게 움직였다. 분명 내재적 동기만으로도 삶의 연료를 채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외재적 요인들을 포기한 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영 불안했다. 또래만큼의 평균적인 수입과 안정적인 직업이 없어도 정말 괜찮을까, 하고.
약 2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하데스타운을 기다리던 어느 날, 별 생각 없이 자주 듣던 하데스타운의 노래 중 하나가 유난히 또렷하게 말을 걸었다.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노는 거라고. 땅에 묻힌 게 아니라면 다 즐기면서 사는 거라고. 힘든 세상 얘기는 그만 하고 와인과 이 여름을 즐기자고. 가진 대로 살라고, 그 안에서 만족하면서 즐기며 살라고,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영그는 지금 이 순간을 살자고.
하데스타운에서 유일하게 후회하지 않는 인물은 페르세포네의 노래였다. 흥 넘치는 박자와 신나는 멜로디를 가진 곡이라 초연을 보는 내내 한 번도 눈물을 흘렸던 적 없던 곡이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방정맞게 눈물이투둑 떨어졌다. 가슴이 쿵쿵 거렸다. 여러 후회로 지금의 행복을 더욱 또력하게 즐기고 있지 못한 내게, 지금 이 순간을 기꺼이 즐기고 누리라는 그녀의 말은 명령처럼, 조언처럼, 위로처럼, 다짐처럼 다가왔다.
사실 후회는 고도의 인지 능력이다. 더 나음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고, 객관적이고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어야만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과거에 대한 성찰은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 후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후회 그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이다. 만약 후회가 두려워 가만히 있었다면,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뜨겁게 솟아나는 사랑도, 세상을 구원하는 용기도, 타오르는 그 헌신도, 다시 피어나는 봄도, 아름다운 그들의 몸짓도. 이 모든 찬란한 이야기는 후회로부터 시작됐고, 후회로부터 움직였다.
하데스타운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무서운 폭풍이 밀려오는 순간,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는 에우리디케를 보며 자기 삶을 방관하지 않는 담대한 용기를 배웠다. 어둡고 따분한 세상에서도 하늘 위 반짝이는 별과 달을 상상하는 페르세포네를 보며 기꺼이 아름다움에 취하는 낭만을 배웠다. 척박한 세상에서도 성공을 일구어내는 하데스를 보며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 묵묵한 고집을 배웠다. 끝내 봄을 피워내는 오르페우스를 보며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꿋꿋하게 나아가는 인내의 태도를 배웠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결말을 알면서도, 후회할 걸 알면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단단한 그 힘을.
내 친구들에게 배운 이 소중한 교훈들을 떠올리며, 나의 삶을 살피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벌써 이들의 몸짓이 사무치게 그립고, 또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