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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주 작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by 분더비니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을 보고

얼마 전 봤던 끼리끼리 키다리라는 콘텐츠에서 봤던 대화들이 생각났다.

키 큰 여성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그걸 하나하나 개척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성으로서,

또 배우로서 느끼는 것들에 대해 나누는 내용이었다.


연극 뮤지컬 무대에 사용되는 원작 텍스트들은

드라마나 영화보다 비교적 낡고 오래된 것들이 많다.

자동차도 없고 라디오나 TV, 영화 다 없던 때, 그때 누가 쓴 이야기를 우린 아직까지 읽는다.


남성 위주의 서사들이 많다 보니

당연히 여성 배우가 설 수 있는 무대와 역할은 한정적일 수밖에.

주인공의 연인 혹은 가족으로 그칠 때가 많다.


아직도 여전히 여성 서사가 빈곤한 무대에서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의 주인공은 심지어! 할머니들이다 ��


사회적 지위가 높은 퍼스트레이디도 아니고,

꿈을 펼치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도 아닌,

늙고 주름이 깊게 팬 할머니들이 그 주인공.


‘늙으면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사는 할머니들의 삶이 얼마나 대단하고 거창할까.

때문에 이야기의 반경은 좁고, 때때로 시시하고, 아주 작다.


인물들이 겪는 아픔과 슬픔은 세상을 구원하는 주인공의 것들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가부장적 시대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들의 삶이 얼마나 대단하고 거창하겠나.

무시 당하고 구박 받는, 읽고 쓸 줄 몰라 응어리 진 마음만이 가득한 이들인걸.


하지만 그래서 이들의 소박함이 오히려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렇게나 소박하고 수수한 할머니들의 삶이 한 편의 시와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저 벅찰 만큼 반가웠다.

그들의 가깝고 친숙한 모습에서 그립고 고맙고 반가운 것들이 자꾸만 떠올라 조용히 눈물을 훔치면서.


가시나들은 그런 극이다. 결코 늦은 건 없다며 든든한 용기를 토닥이는, 깔깔 웃으면서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작고 소박한 삶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찾아 건네고, 세상의 많은 구박 속에서도 삐뚤빼뚤 무언가를 시작하고 도전하는 힘을 주는! 이런 이야기가 시와 연극, 영화와 뮤지컬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이 세상에 가시나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더 자주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가시나들의 이야기니까. 그게 우리들의 시작이니까.



@분더비니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wunderbi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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