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했다. 9월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낯설 만큼, 하루하루가 촘촘히 쌓여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길게 느껴진 해가 또 있었던가.
입사한 지 25년. 23년을 일하고 1년의 직무연수를 마친 뒤, 다시 일터로 돌아온 1월이었다. 공백을 메우려는 듯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기관평가 준비, 미래 전략 기획, 외부 대응 보고서까지… 끝없는 과제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한 가지를 마치면 또 다른 일이 뒤를 이었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다음 파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한이 촉박한 일들을 붙잡고 있으면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다. 눈 깜짝할 새 하루가 저물고, 달력의 장이 한 장씩 사라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날들이 오히려 더 길게 남았다.
짧은 하루였는데, 며칠을 살아낸 것 같은 묘한 느낌. 회의실 창문으로 스며든 아침의 빛, 서류를 넘기던 손끝의 마찰,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던 얇은 김. 그 모든 순간이 기억 속에서 천천히 되살아난다. 분명 빠르게 지나간 날들인데, 그 시간의 결은 두껍고 느리게 남아 있었다.
물리적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얼마나 깊이 살아내느냐에 따라 그 길이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비어 있는 한 달은 금세 사라지지만, 밀도 높은 하루는 몇 해의 무게를 품는다. 시계를 본다고 해서 시간의 진짜 속도를 알 수는 없다. 시간은 초침이 아니라, 내 마음의 리듬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바빴던 날들이 내 인생을 길게 늘려주었다. 고단했지만, 그만큼 많은 장면이 내 안에 남았다. 그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하루의 길이를, 한 해의 두께를 늘려 주었다.
달력 한 장은 얇지만, 그 속의 하루하루는 한 권의 책보다 두껍다. 그 이야기들이 모여 내 인생의 시간을 천천히, 그러나 깊게 만든다.
시간은 단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살아내는 만큼, 그 속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렇게 채워진 날들의 시간은 달력 너머에서도 여전히 흐른다. 조용하지만, 결코 멈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