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밤의 짖음, 풍경되다

by 박웅

허리가 다시 말을 듣지 않는다. 십여 년 전 디스크 수술을 받고도 완전히 나은 적은 없었다. 해마다 두세 번쯤은 통증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몸은 신호를 보냈다. ‘천천히 움직여라, 조심해라.’ 그걸 무시하고 무게감 있는 물건을 번쩍 들어 올리거나, 무심코 몸을 비틀 때면 곧장 그 신호가 왔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며칠 쉬면 금세 괜찮아졌다. 그런데 이번엔 왠지 달랐다. 예방 삼아, 마음을 다잡듯 걷기를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아파트 단지 밖으로 나섰다. 바닥엔 비가 살짝 고여 있었고, 비 냄새와 흙 냄새가 섞인 공기가 젖은 저녁을 감쌌다. 금요일 저녁의 거리는 드물게 한산했고, 빗물 냄새와 바람이 뒤섞여 묘한 고요를 만들었다. 그때, 맞은편 아파트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월, 월, 월…”

낯선 울림이었지만, 이상하게 익숙했다.


순간, 젖은 도로 위 신호등 불빛이 번지며 내 기억을 건드렸다. 멀리 시골 외할머니 댁 마당, 별빛이 쏟아지던 여름밤. 그 적막을 깨던 건 언제나 어딘가에서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있기에 어둠이 덜 무서웠고, 세상이 아직 깨어 있는 듯했다.


장면은 또 바뀌었다. 내가 살던 집 마당의 개들 — 세퍼드, 치와와, 코커스파니엘. 그중 치와와 한 마리가 어느 주말 아침, 어찌된 일인지 안방으로 뛰어들어왔다. 놀라서 벌떡 일어난 나와 허둥대던 엄마, 그리고 녀석의 까만 눈망울. 그 순간의 소동과 웃음이 문득, 오늘 밤의 짖는 소리 속에서 되살아났다.


기억에서 돌아오자, 여전히 짖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다. 불편 대신 추억이, 원망 대신 미소가 찾아왔다.


문득 오래전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괴로움은 어떤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방식에서 비롯된다.”

에픽테토스의 그 말이 이렇게 마음 깊이 와닿은 건 처음이었다.


짖는 소리는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그 소리를 듣는 나였다. 같은 소리라도 듣는 태도가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 불편하던 소리가 그리움이 되고, 시끄럽던 밤이 추억의 무늬가 된다.


세월은 몸을 바꾸고, 감각을 다듬는다. 예전엔 불평으로 가득하던 일상에서, 이제는 배움과 위안을 건져 올리게 한다. 몸이 조금씩 불편해질수록 마음은 조금씩 유연해진다. 삶은, 아마 그런 식으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누군가의 방해가 아니라, 세월이 내게 들려주는 하나의 소리, 하나의 풍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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