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한 끼의 밥상, 결핍의 풍요

by 박웅

주말을 앞둔 저녁, 아이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뒤로 점점 보기 어려워진 얼굴이었다. 근처 카페에 들렀다.


“뭐 마실래?”

내 물음에 아이는 키오스크 화면을 이리저리 넘겼다. 손끝은 멈출 줄 모르고, 눈빛은 진지했다. 뒤에는 기다리는 손님들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아이는 여유로웠다.


나는 기다리다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선택해. 모두를 잃는 것보단 하나라도 얻는 게 낫잖아.”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아빠, 그래도 이왕이면 최선을 골라야지.”


그 대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예전엔 나도 그랬다. 먹고 싶은 게 많았고, 고르고 싶은 게 많았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선택한다는 행위가 주는 설렘이 컸다. 명절이 지나고 차려지던 커다란 상 — 갈비찜, 잡채, 동그랑땡. 그 음식들은 자주 먹을 수 없었기에 기다림 자체가 기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어느 식당에 가도 그 메뉴들을 만날 수 있고, 무엇이든 주문하면 금세 문 앞까지 온다. 풍요는 넉넉하지만, 이상하게 감각은 무뎌졌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던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음식 앞에서 조급함을 잃었다. 자극적인 맛 앞에서도 마음이 조용했다. 처음엔 그것이 상실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구나.”

그런 아쉬움이 스며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 무디어진 감각이 다른 문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강렬한 맛보다 오래 남는 맛을 찾는다. 매운맛 대신 밥알의 고소함, 자극 대신 두부의 부드러움. 입안에서 천천히 변하는 온도와 질감이 오히려 깊게 다가온다. 풍요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세계가, 비어 있을 때 오히려 또렷해진다.


얼마 전,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밤. 아내가 급히 차려준 단출한 밥상을 마주했다. 김치, 달걀, 두부 몇 조각. 그날따라 그 밥상이 유난히 따뜻했다. 배고픔이 단순한 한 끼를 최고의 만찬으로 바꾸어 놓았고, 그 속에 담긴 손길이 맛을 완성했다.


그때 알았다. 감각이 달라지면, 가치도 달라진다는 걸. 예전엔 풍성해야 만족을 느꼈지만, 이제는 부족함 속에서 더 깊은 충만을 느낀다.


결핍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드러내는 힘이다. 풍요는 모든 것을 주지만, 결핍은 무엇이 진짜 필요한가를 가르친다.


나이 든다는 건 아마 그런 일일 것이다. 많이 가지는 법을 배우는 대신, 적어도 충분하다는 걸 깨닫는 일.

오늘의 한 끼는 소박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충분히 배부르고, 조용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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