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반. 잠은 이미 나를 떠났고, 시간만이 방 안을 느릿하게 흘렀다. 이른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긴장이 몸속을 맴돌았다. 눈을 감아보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결국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제주의 조용한 마을. 숙소 앞 벌판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들이 서로를 밀치듯 터져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시끄럽지 않았다. 불협화음이 아니라, 어딘가 절묘한 합창 같았다. 찌—익, 찌르르르, 찌륵. 소리들이 서로를 덮지도, 지우지도 않았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의 밤을 만들고 있었다.
그 소리 속에서 나는 문득 오래된 기억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골 외할머니 댁 마당, 여름밤이면 풀벌레 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우던 시절. 그때의 나는 그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너무 당연했기 때문이다. 풀벌레 소리는 늘 거기 있었고, 나는 늘 그 곁을 지나쳤다.
도시에서의 세월도 마찬가지였다. 풀숲이 있고, 조경이 있고, 실개천이 있었지만 나는 그 어디에서도 풀벌레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이제야 안다. 소리가 없었던 게 아니다. 내 귀가 닫혀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귀가 아니라 마음이 닫혀 있었다.
바쁘게 달려온 세월 동안 나는 늘 앞만 보았다. 멈출 여유가 없었고, 들을 틈도 없었다. 그러니 세상은 점점 소음으로만 들렸다. 삶의 소리는 늘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잡음이라 부르며 지나쳤다.
이제야 다르게 들린다. 삶이 조금 느려지고, 마음이 여백을 얻자 그때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하나둘 깨어난다. 풀벌레 소리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건 내 하루의 끝에 찾아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말 없는 위로를 건넨다.
세월이 쌓인다는 건, 어쩌면 이런 일인지 모른다. 소음 속에서 화음을 알아듣는 일. 침묵 속에서 울림을 찾아내는 일. 두려움으로 가득하던 밤이 사색의 시간으로 변하는 일 말이다.
9월의 새벽바람이 풀벌레의 합창과 섞여 더없이 부드럽게 내 귀를 스쳤다. 마음을 내려놓자, 그제야 들렸다. 늘 가까이 있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
삶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늘 곁에 있었지만 오래 들리지 않던 소리들, 한 걸음 멈춰 서서 조금씩 배워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나이 들어 얻는 가장 조용한 선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