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김치찌개, 한 숟갈의 귀향

by 박웅

아버지 생신이었다. 작년엔 나도, 아내도, 아이도 그날을 잊은 채 지나쳤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으셨지만, 그 침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본가 근처 호텔 뷔페를 예약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저녁, 부모님과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식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반짝이는 조명 아래로 랍스터, 전복, 양갈비, 후토마키, 디저트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평소 적게 드시던 아버지도 이날만큼은 젓가락을 바삐 움직이셨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우리는 말보다 맛에 집중하며 식탁을 채웠다.


돌아오는 길, 배는 가득했지만 마음 한편이 이상하게 비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냄비를 꺼냈다. 냉장고 속 묵은 김치와 두부를 꺼내 아무 생각 없이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김치가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고소한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국물이 걸쭉해질 무렵 밥 한 공기를 퍼서 말았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갈을 떠넣자, 속이 풀리듯 마음이 차올랐다.


그건 허기를 달래는 한 숟갈이 아니었다. 오히려 허기를 넘어 충만으로 향하는 한 숟갈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를 채우는 건 언제나 화려한 음식이 아니다. 세상의 미식이 아니라, 늘 곁에 있던 밥 한 공기와 김치 한 조각, 그 익숙한 온기였다. 젊을 땐 자극과 풍요를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신김치의 산미, 오래 끓여 부드러워진 두부, 밥알과 어우러지는 국물의 깊은 맛이 더 크다.


입맛이 단순히 변한 게 아니었다. 감각이 섬세해지고, 음식이 품은 시간까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김치찌개의 맛은 재료의 조합이 아니다. 발효의 시간, 가족의 손길, 함께 나눈 계절의 냄새가 한 숟갈마다 녹아 있었다.


밥 한 숟갈에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향해 달리지만, 결국 돌아오는 자리는 평범함이다. 그 평범함이 낡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사실은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고, 다시 돌아온다.


김치찌개 앞에서 나는 웃었다. 예전보다 덜 자극적이지만, 훨씬 깊고 단단한 만족이 있었다. 나이 든다는 건 감각을 잃는 게 아니라, 감각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느끼는 일이다. 삶의 본질은 특별한 미식이 아니라, 늘 곁에 있던 한 끼의 자리에서 드러난다.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우리가 진짜로 배부른 이유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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