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하루에도 몇 번씩 표정을 바꾼다. 아침 햇살을 받은 바다는 옅은 청색으로 투명하게 빛나다가, 한낮에는 짙은 푸름으로 깊이를 드러낸다. 해가 기울 무렵이면 황금빛이 물결 위에 흩어지고, 달빛이 뜨는 밤에는 은빛 윤슬이 잔잔히 흔들린다. 같은 바다인데도 매 순간 다른 바다다. 그래서 바다는 언제나 낯설고도 신선하다.
나는 그 바다를 자주 찾았고, 바라보며 오래 머물렀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익숙함, 그러나 매번 달라지는 새로움. 그 두 가지가 함께 있어 바다는 지루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익숙함’이라는 말이 마음속에 남았다. 익숙함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만, 너무 오래 머물면 무심함으로 흐르기 쉽다. 안락함은 방심으로, 안정감은 나른함으로 바뀌기도 한다. 바다가 날마다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 역시 금세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고 말았을 것이다.
바다가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움을 잃지 않듯, 삶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다. 가장 익숙한 관계 속에서조차 무심함이 자라나는 경우 말이다. 문득 오래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이를 위해 문을 붙잡아 주던 나를 보며, 아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나한테도 좀 잡아주지. 오빠는 남한테만 친절해!”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배려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고,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게 왜 문제인가 싶었다. 하지만 곧 떠오른 장면들이 있었다. 함께 집을 드나들 때 문턱에 걸려 불편해하던 아내의 모습, 내가 아내를 가로막고 낯선 이에게 먼저 양보하던 순간들. 남에게는 작은 친절도 귀히 여기면서, 정작 아내에게는 스스로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서 오히려 덜 챙기게 되는 것—그것이 익숙함 속에서 자라난 무심함이었다.
바다는 늘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결코 어제의 모습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이 바다를 지루하지 않게 하고, 늘 새롭게 다가오게 한다. 나도 바다처럼 살고 싶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당연함’이라는 이름으로 무심해지지 않고,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움을 잃지 않는 삶.
빛과 색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배운다. 관계란 단지 한자리에 오래 머무는 일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야 익숙함이 무례로 흐르지 않고, 권태가 다시 설렘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새로움이 삶을 빛나게 한다.
바다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지만, 새롭게 다가온 건 나의 시선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같은 바다 앞에서, 어제와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