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햇살이 거실 가득 쏟아졌다. 정오가 가까워지는데도 방 안은 고요했다. 주말을 맞아 집에 온 아들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문을 열고 말했다.
“여태 자? 해가 중천이다. 얼른 일어나라.”
아들은 눈을 반쯤 뜨더니 나에게 묻는다.
“아빠, 몇 시야?”
“열두 시 다 됐어.”
“응, 알겠어.”
그리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모든 게 그대로였다. 그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하루를 허투루 보내는 것 같아 안타까웠고, 무언가 놓치고 있는 듯한 불안이 덮쳐왔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안 일어나? 과제도 있다며. 그렇게 게을러서 어쩌려고 그래!”
아들은 놀란 얼굴로 나를 보며
“어제 늦게 자서 그래. 알았어, 일어날게. 나 학교에선 부지런해. 걱정하지 마.”
하고 조용히 말했다. 주방 쪽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좀 쉬게 놔둬. 주말인데 쉴 수도 있지.”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창밖으로 눈을 돌렸지만, 내 안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아들은 태어나 처음 부른 말도 “아빠”였고, 일하느라 늘 바빴던 나와 아내 대신 본가에서 자라며 주말마다 나를 향해 달려와 안겼다. 그 아이에게 나는 자주 화를 냈다. 큰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목소리가 쉽게 높아졌고, 그럴 때마다 아이는 울다가도 다시 웃으며 내 곁으로 왔다. 시간이 지나면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곱씹어보니, 화의 이유는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세워둔 질서에서 벗어난 모습이 나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은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하고, 하루는 계획표처럼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는데, 아이의 자유로움은 그 질서를 쉽게 무너뜨렸다. 나는 그 혼란을 견디지 못했다. 그 불편함이 결국 화로 변했던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아이에게 본 건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감추고 싶고, 바꾸고 싶었던 내 모습이 아이라는 거울에 비쳤을 때, 나는 그것을 외면하려 했다. 거울은 겉모습만 비추지만, 아이는 내 안을 비춘다. 내가 외면해온 그림자를,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보여준다.
그래서 아이는 내게 혼낼 대상이 아니라 나를 비춰주는 또 다른 나였다.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아직도 그 앞에서는 미숙하고, 자주 흔들린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흔들림조차 나를 조금씩 바꾼다는 것을.
아이는 나의 거울이고, 그 거울 앞에서 나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그 거울은 사라지지 않겠지. 단지 방향만 바뀔 것이다. 이젠 내가 그 앞에 비춰질 차례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