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다시, 느낀다는 것

by 박웅

돌아보면, 이 모든 글은 거창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잠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고, 오래 바라보고, 조용히 느낀 것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한때는 너무 당연해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삶을 깊게 물들이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삶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변화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이제야 안다.

풀벌레 소리 하나, 김치찌개의 한 숟갈, 조용한 카페의 풍경,

아내의 말 한 줄기, 아이의 한마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내 안의 감각을 깨우고,

세상을 향한 시선을 조금씩 달라지게 했다.

그 변화들이 쌓여 결국 나라는 세계를 바꾸어 왔다.


달라진 감각은 세상을 새롭게 보게 했고,

새롭게 본 세상은 다시 나를 새롭게 만들었다.

더 이상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조급함에 휘둘리지 않는다.

놓치지 않으려 집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이 자리에 머물고,

곁에 있는 사람을 다시 바라보고,

지나치는 순간을 오래 음미한다.


시간은 앞으로도 흘러갈 것이다.

몸은 변하고, 관계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그 변화가 두렵지 않다는 것을.

감각이 달라질 때마다 세상은 새 얼굴을 드러내고,

나는 또 한 번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이 끝나는 이 자리에서, 나는 다시 시작점에 서 있다.

여전히 배우고 있고, 여전히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언젠가 또 다른 감각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때 나는 오늘과는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나이 듦은 끝이 아니라,

감각이 계속 새로워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위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마주할 다음의 풍경을, 조용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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