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결핍에서 시작해 아름다움으로 나아가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by 박웅

우리는 사랑을 말하지만,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설레고, 함께 있으면 기쁘고, 보고 싶어지는 마음. 이 흔들림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사랑을 감정이라 믿고, 마음의 움직임을 사랑의 본질로 여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가장 깊이 움직여온 힘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단순한 감정일 리는 없다.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미하는 『향연』에서 플라톤은 뜻밖의 말을 남긴다.

“에로스는 아름답지 않다.”


사랑은 아름다움을 소유한 상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이다. 무언가를 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로스는 풍요의 아들이 아니라 ‘결핍의 아들’이다.


플라톤은 말한다.

“사랑은 결핍에서 시작되는 힘이며, 존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운동이다.”


사랑은 넘침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출발한다. 그 부족함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그 결핍 때문에 우리는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결핍은 상처가 아니라, 존재를 움직이는 가장 강한 에너지다.


사랑은 타인을 소유하고자 하는 충동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가 스스로를 넘어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사랑의 첫 움직임은 누군가에게 끌리는 마음이지만, 그 마음은 결국 나를 움직여 더 큰 세계로 이끌어간다.


플라톤은 이 사랑의 길을 아름다움을 향한 상승이라 불렀다.


사랑은 한 사람의 몸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단지 한 개인에게만 있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넓은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한다. 육체의 아름다움에서 영혼의 아름다움, 지혜의 아름다움, 그리고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나아간다.


사랑은 인간 안에 심어진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충동’이다. 사랑이 우리를 흔들 때, 사실 흔들리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사랑은 부족함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 부족함이 향하는 방향을 밝힌다.


우리가 사랑에서 상처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의 고통은 누군가를 잃어서가 아니라, 내 존재의 가능성이 닫혀버렸다고 느끼는 데서 온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키워가는 과정이다. 사랑이 나를 흔드는 만큼, 그 흔들림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이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나는 무엇을 향해 나의 존재를 움직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존재로 성장하고자 하는가.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고통이지만, 사랑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더 깊은 상실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결핍의 고백을 요구하지만, 그 결핍에서 더 나은 나를 발견하게 한다.


사랑은 누군가를 얻는 일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고 더 깊어지는 일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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