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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아 Feb 03. 2024

몸과 마음의 키


# 몸과 마음 발맞추어 자라라


지난 3개월 넘게 준비하고 근래에는 아침마다 연습에 매진했던 우리 집 유치원생들의 사랑 음악회가 끝이 났다. 핸드벨 장구 작은북 댄스 발레 합창까지 지난 1년 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발휘하기 위한 디데이. 목을 길게 빼고 관객석의 엄마 아빠를 찾아 손을 흔들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하는 꼬맹이들이 무려 2시간을 견뎌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녀석들에게는 꽤나 길고 고단했을 찡한 하루 끝에 샤워를 하며 물었다.

- 서현아 오늘 사랑음악회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 핸드벨

- 아기공룡둘리?

- 응

- 왜 그게 제일 좋았어?

-마음이 좋았어

-마음이 좋았어? 어떤 게 좋았어?

-긴장됐었는데 편안해졌어

- 무엇이 우리 서현이의 긴장된 마음을 편안하게 했을까?

-소리가

- 그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줬어?

- 

머리를 감기는 엄마의 손에 뒤통수를 맡기고 샤워부스에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팔린 와중에도 딸아이는 부지런히 대답했다. 시크한 말투로 짧게 끝내는 문장 안에 아이의 마음이 정확히 담겨있었다.

아, 마음이 자라나는 일이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저 작은 몸집의 아이가 스스로에 대해 또렷이 알아차리고 있다는 사실이 자못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자기 마음을 알고 설명하는 것의 어려움과 난해함을 아는 어른으로서 느끼는 다소의 부끄러움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아이들의 성장과 지난 몇 달의 고생이 기특한 날이었으나, 무엇보다 훌쩍 자란 마음의 키에 무척이나 가슴 저릿한 밤이었다.

앞으로도 몸과 마음 모두 발맞추어 자라라. 몸만 큰 어른이 되지도, 마음만 큰 어린이가 되지도 말고. 이렇듯 몸과 마음이 함께 자라서 내내 절뚝거리지 않는 삶을 살아라.


길어진 새벽에 대고 빌고 또 비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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