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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찌 Jan 18. 2024

언젠가는 고통에 감사하게 될 날이 온다

성장통에 대한 감각

스타트업 씬에 들어온 지 3년이 꽉 차 간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며 나는 스타트업 뉴비가 성장을 하기 위해 겪어야만 했던 고통들에 대해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그야말로 성장통이었던 그 아픔들에 대해 소고 해 본다.


내 첫 직장은 가세가 기운 대기업이었다. 말만 대기업이지 내 또래에 그 회사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입사 후 그 회사는 바로 중견기업으로 격하되었다.)


철밥통 같은 직장, 만족스러운 초봉, 서울 본사 근무, 수뇌부처럼 느껴지는 조직까지. 겉으로 보기에 이 회사, 이 직무는 내게 나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 회사를 3년이 되기도 전에 박차고 나왔다. 나는 그 회사에서 무능했고, 회사도 무능했다. 조직은 거대했고 나는 키보드나 뚱땅거리는 일개 직원에 불과했다. 이 회사가 돈을 버는지 못 버는지보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항상 투덜거리기만 했다.


꿈을 좇겠다는 명목이 있었다. 겉으로만 괜찮아 보이는, 견디는 것 외엔 별도리가 없는 직장인이 되고 싶진 않았다. 치기 어린 나의 꿈은, 글을 써서 돈 버는 사람이었다. 진짜 문학도도 하기 어려운 일을 월 2백을 받더라도 하겠다고 덤볐지만, 파주 그 동네의 사람값은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게다가 에디팅 경험이 없는 초짜는 헐값에도 안 팔렸다.


그래서 글 써서 돈 벌 수 있는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게 된 것이 스타트업에 발을 들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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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좋았을까? 글쎄, 일단은 첫 3달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 첫 KPI는 블로그 콘텐츠 발행 수였다. 그러다 서비스 기획도 하고, 상품 기획도 하고, 상세페이지도 만들고, 디자인도 했다. 경력도 실력도 없는 주니어가 열정만 갖고 덤볐으니 긴 시간 동안 나는 완전한 스타트업 제너럴리스트(라고 하기엔 거창하니 제너럴따까리라고 스스로 칭해본다.) 행세를 하며 회사의 자본금을 탕진했다.


괴로웠다. 회사가 망해서 돈을 못 벌 수 있다는 생각은 새로운 개념이었다. 런웨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회의에서 한순간에 내 일상도 미래도 불확실해졌다. 회사의 일은 곰곰이 생각할수록 내 기여도에 대한 죄책감으로 바뀌어 나의 무능을 뼈저리게 한탄하게 만들었다.


괴로워서 하루종일 일을 했다. 자기 전엔 어떻게 해야 회사를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뭘 어떻게 해야 돌파구가 생길지 생각했다. 미치지 않기 위해 중간중간 운동을 하는 것 외엔 내게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최소 3개월은 보냈던 것 같다.



참 웃기고 신기한 일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얼추 1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때 나는 그 고통을 머리로도 몸으로도 배우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머리가 복잡하면 헬스를 하고, 씻고 나와 밤에 다시 책상 앞에 앉던 그때 무슨 배움이 있었을까? 찢어지는 듯한,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결국 성장을 위한 것이라는 감각이다.


근육은 손상과 회복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더 강해진다. 헬스를 하다 보면 느껴진다. 고통은 성장과 동의어다. 마음이 아픈 것도 똑같았다. 고통은 결국 성장으로 바뀌게 된다. 다만 근육과 달리 마음은 알아서 잘 '이완'되지 않는다. 스스로 이완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내가 발버둥 쳤던 시간들은 '회복 혹은 정상화'를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스트레스, 압박감, 죄책감, 두려움, 막막함, 무능력함, 외로움...

이런 정신적인 고통들도 결국 이겨내면 마음의 근육을 더 키워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온다. 그때 내가 겪었던 고통에 감사하게 될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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