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이기는 의로움

덕불고 필유린, 그리고 영호충

by 일찌

무협지 <소오강호>에서 주인공 영호충은 숨 돌릴 새 없이 몰아치는 사건, 사고에 끊이없이 연루된다.


영호충은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부모같이 여겼던 사부와 사모가 자신을 의심하고, 미래의 배우자라 여겼던 사매에게 버림받았을 때 말이다. 그는 언제나 변명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한 약속으로 인해 입을 다물었다. 언젠간 자신의 결백함을 믿어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결과적으로 영호충은 자신이 가장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으로부터 버림받음으로써 거기에 얽매이지 않게 됐다. 하늘이 무너져내릴 것 같았던 기억 위엔 새살이 돋듯 더 귀한 인연과 기회가 찾아들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고통스러워야 할 순간에 손 끝부터 발 끝까지 온 몸을 고통 속에 담금질했다. 그랬기 때문에 강호의 고수들안 영호충을 인정했고, 악불군과 같은 이들은 영호충을 이용했다.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언제나 진실했던 영호충만이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외로움은 가장 큰 적이 아니다.

외로움을 피하고자 한다면 나는 내가 머무르지 말아야 할 곳에 계속 머무르게 될 것이다.

만약 영호충이 화산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악불군의 꼭두각시가 되어 희생당했을 것이다.



소오강호, 강호를 자유롭게 누비는 영호충의 대서사시를 보며 '덕불고 필유린'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의로움은 외로움을 이긴다.


德不孤 必有隣
덕불고 필유린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나니,
어딘가에 반드시 그와 뜻을 함께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소 없이 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산소가 너무 많아도 살 수 없다. 공기 중에 산소는 21%뿐이고, 78%는 질소가 차지하는데 산소의 비중은 20~22%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의 일상은 아마 78% 투명도로 외로움이 덧칠되어 있을 것이다. 22%에 불과한 사람들과의 관계, 유대 속에서만 숨을 쉴 수 있다며 자꾸만 그 속으로 파고든다면 결국 산소중독에 이르게 될 것이다.


외로움은 불편하다. 하지만 외롭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인생은 불편함을 넘어 괴로움이 된다. 나의 외로움에는 논어의 저 문장이 도움이 됐고, 소오강호로 인해 마음에 와닿게 됐다. 외로움은 그 자체로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 그리고 영원히 지속되는 불변의 상황도 아니다. 외로움은 그것을 이용하는 자에게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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