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운의 짬뽕을 먹기로 결정했다

행운의 여신과 함께하는 비결

by 일찌

운이 좋은 사람은 그저 운이 좋기로 결심한 것에 불과하다. 좋은 운이란 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가파도에 갔을 때였다. 가파도는 우리나라의 유인도 중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섬이다. 바람은 사방에서 거침없이 들이닥쳤다. 쌀쌀하고 외로운 기분에 뜨뜻한 국물 생각이 간절해졌다. 섬에 하나뿐인 편의점에 들러 육개장 컵라면을 먹는 상상을 하며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런데 세상에 육개장이 없다니, 신라면과 새우탕 같은 통통면이 장악한 편의점의 광경에 바로 마음을 접어버렸다. 그렇게 점심을 해결하기 위한 고행길이 시작됐다. 마음속 1순위였던 컵라면을 못 먹게 되니 눈에 차는 것도 없고, 설상가상으로 연 식당도 별로 없었다. 그렇게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선착장에 도돌이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근처에 있는 중국집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두 번째 ‘그런데’의 등장. 손님이 몰려 하필 짜장 소스도 다 떨어졌더란다. 짬뽕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심지어 너구리보다 면이 굵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주문을 했다. 먼저 온 손님들이 짜장을 먹는 걸 보며 속으로 ‘나는 참 운도 없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내가 나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것도 아닌 이 상황에서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 불쌍한 나’, ‘조금만 일찍 왔어도 원하는 것을 얻었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돌고 돌아 이 식당에 들어오고 결국 짬뽕을 먹기로 선택했으면서, 누구에게 동정받고 싶어 나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드는 걸까?


나는 오로지 나의 생각만으로 나를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내 하루를 망치고 있었다. 물론 짬뽕은 기분을 망칠 만큼 맛이 없긴 했다. 하지만 짬뽕을 먹으며 정체불명의 패배감을 느낀 건 짬뽕 때문이 아니라 나의 사고방식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회사 사수에게 술에 취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윤동주의 서시를 생각하면 그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그저 편하기만 해서 되려 마음이 불편하다고. 나는 내가 마음 편히 사는 게 그렇게 보기가 싫은지 자꾸 못살게 군다. 고작 한 끼의 식사에서 불행과 실망을 모두 찾아내는 엄청난 능력을 선보였으니 그야말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경지에 이른 셈이다.


운이 좋은 사람은 길에 있는 돌멩이에 개의치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새로 깐 아스팔트 도로처럼 매끈하지 않으면, 내가 가는 길이 탄탄대로가 아니라면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길에 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를 찾아가 구태여 넘어지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런 습관이 나를 어떤 순간에서도 불행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돌멩이를 관찰하고, 때로는 기분 좋게 지나칠 정도로 여유를 가지며 살 마음의 여력을 갖췄다. 과거에 내가 짬뽕 하나에 기분이 상해 하루를 망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내게 좋은 운이란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안에는 좋고 나쁨이 공존한다. 어떤 프레임으로 볼 것인지, 선택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다.


긴 시간 불행함에 중독되어 살았다. 나는 태어나기를 불행하고 우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참 진부하게도, 불행은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태도의 문제였을 뿐이다. 그래서 내 관점과 태도를 바꾸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인생엔 크게 좋을 것도, 크게 나쁠 것도 없다. 좋은 운, 나쁜 운이랄 것도 없다. 운은 무색무취한 것이고, 내가 내리는 가치 평가에 따라 달라 보일 뿐이니 말이다.


정해진 운명이 있을까? 타고난 운이 있을까?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 건 내 마음가짐이다. 관상학의 바이블, 마의상법에서도 타고난 운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니, 말 그대로 나의 운명은 "내 손안에" 있는 것이다.



골상(두개골)은 관상보다 못하고,

관상은 찰색(혈색) 보다 못하며,

찰색은 심상(마음) 보다 못하다.

- 마의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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