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을 떠돌기는 싫어

남들은 노후 대비, 나는 사후 대비

by 일찌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서운 이야기 속에는 항상 죽은 자의 원혼이 나타난다. 말 그대로 '원한을 가진 영혼'이기 때문에 각종 사연을 가진 귀신들이 나타나 인간에게 해코지를 한다. 착한 귀신도 가끔씩은 나타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귀신은 무섭고 우리를 해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막상 귀신을 다루는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끝나던가?

누군가 귀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사과하거나 위로해주면 귀신은 그제야 마음을 풀고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으로 승천해 떠난다.


잠깐만,

세상에.

살아있을 적에 마음속에 품고 있던 원한 때문에

이 세상에 계속 남아서 괴로워해야 한다고?


살아있을 때도 죽고 싶었을 텐데,

죽어서도 한이 남아 물에 적셔진 솜처럼 뜨질 못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난 이야기 속 귀신들처럼 구천을 떠돌고 싶지 않다.


심지어 귀신들의 사연들은 회차를 거듭해서 보다 보면 점점 더 하잘 것 없는 이야기로 격하된다. (마치 명탐정 코난에서도 점점 사람 죽이는 동기가 허접해져 가는 것처럼...) 사정이 이렇다면, 어느 순간 나도 구천을 떠돌만한 원한을 가진 사람 후보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것만은 사절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내가 스스로 내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위로해주면 되지 않을까? 살면서 원한이 남지 않도록 살아있는 동안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그래서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명상을 하며 셀프케어에 투자한다.)


죽어서도 구천을 떠돌기는 싫다.

나는 윤회도 싫고 천국이나 지옥도, 영원회귀도 싫다. 불교에선 열반에 들면 윤회를 멈추고 소멸한다고 말한다. 죽어 없어지고 싶어서 노력하는 삶이라니, 아이러니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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