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어차피 안 죽어

그러니까 맘 편히 지켜보자고, 결말은 해피엔딩이니까.

by 일찌

10대 때는 소년만화의 애청자였다.

특히 나루토는 매회를 빼놓지 않고 본방을 챙겨봤다. 실패, 고통, 좌절, 무시, 무능력에도 포기하지 않는 나루토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나루토에게 쉬운 상대는 없었다. 항상 그보다 조금 더 강하거나, 말도 안되게 강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난 나루토의 팬이라서라기보다는, 주인공이니까 이길 거야! 하는 생각으로 편하게 그의 싸움을 관람했다.


20대 때는 자기 계발서를 많이 읽는다.

한 때 연달아 읽은 자기 계발서들을 종합해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무릇 여러 번의 실패와 여러 번의 성공을 겪은 사람들이었다. 그 굴곡진 삶의 족적이 그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들고 본받을만하게 만들었다.


10대와 20대의 내가 이런 스토리에 주목했던 이유는 범인이라면 스러졌을 그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신념이나 기발한 방법 등으로 다시 재기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이 왜, 어떻게 다시 성공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소년만화와 자기 계발서는 기본적으로 히어로물이다. 히어로물은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에 독자는 주인공이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을 이어나가길 기대한다. 더불어 멋지게 꿈을 이뤄내기를 기다린다.


히어로들은 뭐가 달랐을까? 아마도 성공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리라. 실패에서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경험에서 나온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는 인물들은 가상이건,
실재이건 간에 주인공으로서 산다.
그들은 실패에 주저앉음으로써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나는 내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방 사수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내 삶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는 '죽기 전까지는 죽지 않으며' 살아남을 게 분명한 주인공인 것이다.


주인공이면 어때야 하더라?

죽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이들을 엮어 나라는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내가 죽지 않았음을 똑똑히 지켜봤다. 죽고 싶었던 날들에서도 헤쳐 나와 어떤 날에는 웃었던 것을 기억한다. 힘들었던 날들의 기록을 꺼내보며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날의 나를 위로한 적도 있다.


지금 돌아보니

제길, 난 주인공이라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이었다.

주인공인 줄 알았으면 좀 더 당당하고 멋있게 살걸.

내가 결국에는 이길 거라는 걸,

해낼 거라는 걸,

마지막엔 웃을 거라는 걸 확신했더라면

이토록 매일 요동치는 마음에 괴로워하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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