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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찌 Oct 22. 2022

베짱이의 레슨런 2 : 잘함과 잘못함의 기억

잘해도 못해도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쩌면 자기가 잘한 일은 쉽게 잊고

잘못한 일만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기타 레슨에선 지난번에 헤맸던 팝 뮤트를 비교적 능숙하게 해냈다. (팝 뮤트는, 기타 초보 입장에서 말하자면 줄을 손날로 막으면서 줄의 일부만 치는 기법인데 조금 더 베이스스러운(?) 음이 난다. 둥 둥 둥..)


"레슨을 받으러 와서 바로 잘 치면, 집에 돌아가선 어떻게 했는지 잊어버려요. 그런데 레슨에서 잘 안되면 집에서 그 부분을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분명 지난번엔 못했는데,

일주일새 일취월장(?)한 나를 보며

기타쌤이 신기해하길래 내가 설명을 해준 것이 이러하다.


레슨을 받을 땐 분명 어떻게 하는지 머리로는 입력이 됐는데 손이 못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 기억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는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도 잊지 않고 신경 써서 연습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가르쳐주자마자 어쩐지 잘 따라한 날에는, 당장의 칭찬과 우쭐함을 안고 돌아갈 수는 있지만 웬일인지 혼자 쳐보려 하면 새까맣게 머릿속이 비워져 버린다.


이거 참, 내 뇌는 내가 잘못한 것만 잘 기억하고

잘한 건 다 잊어버리는 신기한 기능을 가졌나 보다.


분명 기타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잘한 것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게 말이다.

못한 것만 자꾸 떠오르는 건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 아닐 거다. 더 나아지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일 거다.


하지만 내가 잘한 걸 나조차도 자꾸 잊어버린다면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란 나만 남는다. 주변에서 나를 봐온 이들이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준들, 내게 남은 게 실수와 실패뿐이라면 나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나의 잘함과 잘남은 내가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 날이다. 누구에게 자랑하기 위함이 아닌, 그냥 나를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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