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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찌 Sep 27. 2022

베짱이의 레슨런 1 : 틀려도 끝까지

기타를 배운지 두달 째다.


심심함에 못이겨 기타 원데이 클래스를 질러버린 어느 주말, 나는 운좋게 마음에 드는 강사를 만났다. 강사가 1:1로 가르쳐주니 첫 1시간만에 나는 마룬파이브의 'sugar' 반주를 끝내고 말았다. 정말이지 개인 레슨이라는 건 이런 묘미가 있다. 전문가의 노하우를 혼자 독식하여 단기간에 성과를 급격히 끌어올리는 맛.


다음 날 나는 당근을 통해 중고 기타를 구매했다. 충동 구매가 충동 구매로 이어진 셈이다. 어제의 기타 강사는 기타 중고거래를 대리로 나서 해결해줬고, 기타 상태를 꼼꼼히 살펴 가격을 무려 40%나 깎아왔다. 남는 돈으로 카포를 사고 로또도 한 장 샀다. 고마운 마음과 기타를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월 레슨을 등록했고 나의 베짱이스러운 취미는 그렇게 갑자기 시작됐다.


첫 레슨의 레슨런은 나의 관성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나는 악보에 맞춰 기타를 연주하다가도 하나라도 틀리면 바로 멈춰섰다. 하지만 강사는 노래를 끄지 않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을 가리키며 계속 연주해나가라고 했다. 덕분에 나는 얼렁뚱땅 완주까지 갔던 것이다.


한 번 끝을 보고나니, 완곡을 할 때마다 실력이 일취월장해나갔다. 이런 신기한 일이. 나는 이 새로운 레슨법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완벽주의자였나? 그럴리가. 얼레벌레 살아온 인생이 갑자기 기타 앞에서 한 음이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하려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변모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게도, 나는 내가 틀리는 것에 발작하듯 손을 멈추곤 했다. 어떤 지점에서든 틀렸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레슨을 받으며 알게 됐다. 틀려도 계속 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맞는' 길로 돌아올 수 있다. 틀린 부분이 있어도 나머지 연주를 계속하다보면 불편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즐거운 감정이 그 자리를 채운다. 잘하다가 틀렸던 그 지점에 다시 돌아오면 더 신경써서 음을 맞춘다. 안되면 그 부분만 반복해도 되고, 다시 전체를 연주하면서 조금씩 수정해나가면 된다. 그리고 매번의 연주마다 나아지는 것을 느끼며 재미를 붙인다.



나는 모든 학문, 지식, 지혜가 결국 하나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기타에서 배우는 것 역시 내 삶의 전반에 적용이 될 테다. 교양인이 되기 위해 악기 하나는 다루고 싶었는데, 의외로 연주 자체만 배우는 게 아니라는 점 때문에 흥미롭다. 혼자 기타를 배우며 감탄한 것들에 대해 종종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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