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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찌 Jan 09. 2022

가면도 체면이니까요.

소개팅으로 만난 그 사람은 나에게 잘해주었다. 만나서는 나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수도 없이 이야기했고, 뭐든지 함께 하고 싶다는 듯이 말했다. 내 말을 경청하고 온화한 말로 화답했다.


하지만 난 그 사람이 이성적으로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 만나본 뒤 거절 멘트까지 검색해서 정중하게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마자 그는 태도를 바로 바꿔 내게 일방적이라며 화를 내고, 적당히 하라며 비꼬는 톡을 보냈다가 바로 지웠다.


그 전 만남에선 당일 그가 30분가량 늦었다. 그가 미안하다며 밥을 사겠다고 했다. 그 생각이 나서 분했는지 오늘은 밥값 정산이나 하란다. 입금을 하고 차단을 했다. 아마 차단을 하지 않았으면 그 이후에도 비꼬는 말을 더 들어야 했겠지.



그런데 이 사람, 참 하수다. 말 한마디에 얄팍한 자신의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다니. 이 사람이 '돌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게 감추고 있던 모습을, 이제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 하수다. 자신의 못남을 무기 삼는 사람.


하수는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선 행동을 꾸미고, 누가 보지 않을 때는 멋대로 행동한다. 사실 이게 인간이라면 으레 그렇게 되긴 한다. 왜, 나를 좋게 봐줘야 하는 사람(상사, 거래처, 애인의 가족 등)이 앞에 있다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맞긴 하니까.


중요한 건 내 생각도 행동과 결이 같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가 따로 놀면 나 스스로도 힘들다. 언제나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고, 가면을 벗은 나를 아무도 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니 말이다.


앞의 사례에서와 같이, 머리와 몸이 따로 놀더라도 그것을 굳이 나서서 티 낼 필요는 없다. 그가 갑자기 본색을 드러냈던 그 순간, 그는 나와 안 맞는 사람에서 말 섞을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격하됐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행복을 위해 여러 선택을 하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언제나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지는 못한다. 특히 특정한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길 바라고, 그 결과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얻고 싶다는 전제가 있다면 더더욱 이루기 힘들다. 자기가 설정한 난이도에서 원하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그 사람은 자신이 필요할 때만 좋은 사람이 된다. 목적과 관련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그는 좋은 사람일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큼 세상도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가 얼마나 진실된 사람인지,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인지는 그 간극에서 감춰지지 않고 발견될 수밖에 없다.



성기사(省其私), 사사로움을 살펴라.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앞에서 꾸미는 언행은 물론

뒤에서 그가 한결같은지 지켜본 뒤에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다.



※ 누군가를 위해 쓰는 글에서도, 타인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한 지침에서도 언제나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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