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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찌 Dec 10. 2022

어쩌면 창의적이지 않은 일, 창업

창조는 어쩌면 창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자기 자신을 복제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창조'한 대표이사도 자가 복제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모두가 한 입으로 "대표의 성향이 회사의 분위기를 결정한다."라고 말하니 말이다. 고작 2개의 회사를 경험한 나지만, 여러 회사의 C레벨들을 만나보고 대화해본 결과 회사야말로 굉장히 공식적인 한 인격의 투영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 나의 이직 면접에서 실무진으로 자리했던 A는 어딘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을 골랐다. 임원 면접에 갔을 때 A의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 회사의 대표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불같이 화를 내는 성향이었던 것이다.


허스키하지만 유쾌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의 주인공 B 대표의 경우엔, 일을 즐겁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하는 것을 중시하는 듯했다. 일 때문에 들른 그의 사무실 분위기는 명절을 방불케 했다. 아니, 이렇게도 일할 수 있다고?


내 전 회사를 돌아보면,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나름 신세대 C 사장님이 임명이 된 이후 회사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직원들과 만나는 타운 홀 미팅 때 사장님이 무려 '청바지'를 입고 나왔기 때문. 밖에 나갈 일 없던 내근직들도 정장을 챙겨 입던 회사였지만 미팅을 기점으로 후드티와 청바지가 사무실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였다.


이런저런 회사들의 면모들을 경험하고 곁눈질하며 느낀 것은 그렇다.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일일 수도 있다고. 대표의 감정, 생각, 경험, 일하는 방식 등 모든 것들이 회사에 녹아든다. 나의 상처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식에게 물려주듯 말이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창업이라는 행위가 출산만큼 위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는 나 자신만큼 엉망진창이고, 손 대야 할 것도 신경 써야 할 것도 너무 많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주저앉을 수 없다는 것도, 내가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그저 나 자신을 투영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 세상 안에 나를 꼭 닮은 작은 세상을 하나 더 창조하는 행위, 창업과 경영을 하는 모든 대표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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