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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18. 2023

농부의 꿈을 이루었다

 농작물 재배의 거듭된 실패로 나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아야지. 어떻게 아무 배움 없이 땅파기부터 시작했을까.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던 중 도시농부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하여 신청했다. 도시농부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가에게 농부들을 연계해 주는데, 지자체가 중간 역할을 하며 시기 별로 일자리를 공지해 주고, 농부가 받는 일당의 일부도 지원해 주므로 실제로 농가들에게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나도 농가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그전엔 몰랐다. 단순노동이라면 자신 있었으므로 당장 지원했다. 신청을 한 후에 온라인 강의를 20시간 들으면 수료증을 발급해 준다고 한다. 2023년인데, 아직도 이런 온라인 강의 시수 채우기와 같은 비효율적인 걸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다니. 이런 영상 만드는 데에 투자를 하는 대신 차라리 도시농부가 되면 꼭 숙지해야 할 사항 같은 것을 적어주면 좋겠다. 100페이지라도 기꺼이 읽을 텐데. 나는 시수가 맞는 ‘농부 보험 들기’와 같은, 농사일과는 별 관계도 없는 과목을 대충 선택해, 빠른 감기로 돌려 시간을 채우웠다. 그럼에도 어엿한 도시농부가 되었다.     


 처음엔 바쁜 농가를 위해 순수하게 일손을 돕는 일이므로 무료 봉사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루 4시간 일할 수 있고, 시급이 무려 15,000원이라고 했다. 하긴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공짜노동을 지자체에서 주선하면 난리 날 법도 하겠다.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니 너무 신났다. 가끔 시골로 살러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시골에서 먹고사는 걱정을 하곤 하는데,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시골에 일자리 정말 많다고. 찾아보면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연봉도 적지 않다고. 나는 어차피 n잡러로 사는 인생, 도시농부를 열심히 하며 매일매일 하루에 4시간씩, 농사일을 운동 대신으로 하며 6만 원씩 벌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다양한 농가에서 여러가지 일을 배우면 일 년만 해도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겠는가?

 우리 지역에서 도시농부를 선발하는 방법은 이렇다. 담당자가 문자로 일자와 장소, 그리고 일하는 종류와 시간을 공지해 준다. 그것을 보고 나와 조건이 맞으면 전화로 선착순 신청을 할 수가 있다. 나에게 맞는 일만 골라서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비닐 걷기>와 같은 일이 있길래 지원하려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자분이 남자분들도 힘이 좀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길래 그럼 다음 기회를 보겠다고 했다. 괜히 힘도 못 쓰면서 가서 도움도 못하고 시간만 축내고 일당을 받을 순 없지. <재배한 버섯 상자에 나눠 담기>와 같은 실내에서 하는 선별작업은 인기도 꽤 많은 편이라 빨리 선착순 마감이 되곤 했다.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첫 농가로 복숭아밭을 배정받았다. 내가 할 일은 복숭아가 아직 여물기 전, 복숭아 봉지를 감싸는 일이었다. 일을 받기 전에 물어보았다. “혹시 제가 힘이 좋은 편은 아닌데, 도움이 될까요?” 담당자는 여자도 많이 하는 일이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나는 처음 받은 일에 설레어 전날 밤에 잠을 설쳤다. 집합 시간은 새벽 6시, 혹시 지각해서 일을 망칠 까봐 새벽에 두어 번 깨면서 진짜 잠을 못 잤다.     


 음성군 감곡면은 처음으로 햇사레 복숭아를 출시한, 복숭아의 고장이다(틈새 지역 홍보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봄이면 벚꽃이 딱 질 무렵, 복사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고향의 봄노래에 나오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에 나오는 그 복숭아꽃이다. 벚꽃 보다 조금 짙은 분홍빛에, 복숭아 밭이 쫙 펼쳐져 있으면 얼마나 숨 막히게 예쁜지 모른다. 꽃이 핀 복숭아 밭에 한 발 내딛고 보면 아무라도 붙잡고 의형제를 맺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일을 하러 갔던 복숭아 밭도 그랬다. 복숭아밭 중앙으로 들어가니 동서남북 사위가 죄다 복숭아나무 천지였다. 봄에 복숭아꽃이 필 때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복숭아가 영글면 복숭아 향이 얼마나 달콤할까. 딴생각할 새도 없이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시골 분들은 몹시도 손발이 빨랐다. 충청도에 와서 늘 사람들이 여유 있고 느리다고만 생각했는데, 걸음걸이도, 손놀림도, 나는 충청도 사람들이 이렇게 빠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일을 처음 해보는 나는 눈치껏 앞치마를 두르고, 앞치마 안에 작업할 복숭아 봉지를 한가득 넣고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크게 힘든 것이 없었지만 시간이 많이 드는 단순노동이었다.




벚꽃이 질 무렵이면 복숭아꽃 핀 지역을 찾아 다닐 차례다.



 복숭아나무에 흰색 혹은 노란색 종이가 달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햇살과 병충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노란 종이봉투에는 (현장 사람들은 이걸 봉지라고 불렀다. 내가 볼 땐 종이 재질의 봉투 같아 보였다.) 철사가 달려 있었고, 종이봉지를 벌려 복숭아를 감싼 다음 그 철심이 풀리지 않게 고정시켜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이 봉지를 감싼 다음 복숭아를 소독을 하는데, 소독약 분사할 때의 힘이 세기 때문에 절대 풀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태풍이나 바람이 불 때에도 마찬가지로 힘을 받아야 한다. 대충 걸쳐 놓으면 안되기에 나름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었다. 주머니에 100개짜리 복숭아 봉지 두 세트를 넣고 차근히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 단순노동이므로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하면 시간이 더 잘 갈 것 같긴 했다. 마침 날씨도 흐린 편이라 덥지 않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두 시간이 지나자 주인님(!)이 우리를 불렀다. 정성스레 새참을 준비해 주신 것이다. 옥수수빵과 두유, 그리고 작년에 수확한 복숭아로 만든 복숭아병조림을 챙겨주셨다. 돗자리를 깔고 복숭아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재빨리 먹고 사람들은 또다시 팔 걷어붙이고 작업현장으로 돌아갔다. 다시금 말하지만 충청도 사람들이 이렇게 빠른 것은 정말이지 처음 본다. 역시 일할 때 한국 사람들은 다 최고다.

 나 역시 어디에 일을 하러 가면 내 몫 이상으로 해내기 위해 절대 노력하는 타입이다. 우리 회사에 와서 받는 급여 이상으로 일을 해 준 직원들을 보면 늘 고마운 생각도 들고, 내가 사용자의 입장이 되어 보았기에, 일을 허투루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큰 탓이다. 4시간 노동에 1분이 아까워서 옆 사람에게 뒤질세라 작업을 하다 보니 약 500개의 복숭아에 봉지를 씌워줄 수 있었다. 뿌듯했다. 철심을 누르느라 엄지손가락 손톱 밑이 약간 벌어졌고, 네 시간을 연속으로 고개를 쳐들고 작업을 하다 보니 어깨가 조금 뻐근했지만 보람 있었다. 일을 다 마쳐도 오전 10시 밖에 되지 않았다. 어? 이거 출근 전 매일매일 해도 괜찮겠는데?     


 그렇지만 나는 그 다음날 몸살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로 3일을 근육통으로 컴퓨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깨가 너무 결려 참다 참다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하루 일당 6만 원, 마사지 값 5만 원. 일 못하느라 날려먹은 3일. 회사에서는 또 엄한 곳에 가서 밑지는 장사 하고 왔다며 나를 놀렸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다. 나름 값진 공부였다. 공부는 학비를 들여가면서 하는 거지 돈을 벌면서 공부를 시켜주는 곳이 어디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복숭아 밭에 직접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는 경험은, 돈 주고는 못 하는 거니까.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반나절 일한 일당으로 치킨도 사 먹고 커피도 마셨겠지? 흑.     



복숭아 봉지 싸기 알바 시급 15,000원 4시간 반나절 일당 6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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