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별로, 마을 별로. “도와주세요” 게시판 하나가 생기면 좋겠다.
“101동 305호 도와주세요. 티브이 홈 화면이 오늘 갑자기 달라져서 티브이를 볼 수가 없어요.”
“010-3811-**** 도와주세요. 냉장고 온도를 잘못 건드린 것 같은데 냉장에 넣어두었던 채소들에 살얼음이 생겨요.”
그러니까 어른들이 집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사소한 문제들이나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들에 있어서 잘할 수 있는 이웃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고 스마트폰으로 신청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디지털 소외감을 느끼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을 왜 했냐면, 나라면 선뜻 주기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디지털 소외 문제가 기사화될 때마다 그것을 보며 ‘내가 가까이에 있었더라면 기꺼이 해 드렸을 텐데.’ ‘식당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기 어려운 분들이 내 앞줄에 서 계셨다면 선뜻 도와 드렸을 텐데.’하고 생각했다. 나도 기계에 숙달한 사람은 아니라 함께 버벅거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면 더 낫지 않을까. 부모님과, 할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는 나는 멀리 있는 부모님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바로 해결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럴 때 누군가 우리 부모님을 곁에서 도와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움을 받은 부모님이 젊은이를 또 그냥 보내겠는가. 음료수라도 하나 손에 잡혀 주지 않을까? 다들 주기적으로 쓰레기는 버리러 나갈 테니, 아파트 단지나 마을 분리수거장 근처에 이런 ‘도와주세요’ 옥외 게시판이 하나 생기면 어떨까. 어쩌면 이웃이라곤 아무도 모르고 혼자 사는 요즘 세상에 다시금 서로 알고 사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초등학생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새로 이사 와서 동네가 익숙지 않은 외지인이 동네 이용 팁을 배우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라면, ‘큰 가구 옮기는데 5분만 시간을 내어서 한쪽을 잡아주실 분’이나 ‘책장 조립하는데 나사가 잘 안 맞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고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은 도와주세요 게시판에서 도움을 받으면, 기꺼이 시간을 내서 도우러 온 사람에게 500원 혹은 1,000원 이상의 사례를 하는 것은 어떨까? 어떤 이는 받지 않을 수도 있겠고 어떤 이는 그보다 더 많은 사례를 할 수도 있겠고 용돈이 궁한 어린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모르겠다.
부작용도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것이다. 가장 먼저, 낯선 이를 내 집에 들이면 보안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가까이 사는 한 마을 사람들끼리 범죄의 타깃으로 노출이 될 수도 있겠다. 기분 좋게 도우러 갔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도움 받는 사람은 ‘이것도 못 고치냐’는 식의 불만을 가지고 도움을 준 사람은 기분이 팍 상할 수도 있다. 실컷 도와주고 나니 다시 해달라는 AS 요청이 있을 수도 있겠다. 게시판에 이런 후기가 쓰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티브이 고쳐주러 온 사람이 잘못 만져서 완전 망가져 버렸어요. AS센터에 맡기면 수리비가 더 나올 것 같아요.”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러 갔는데 개인적인 관계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앞으로 인사하고 다녀요, 개인 연락처도 여기 좀... ”
이용에 제한이 없으면 뻔뻔한 요구도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이에요, 숙제 좀 도와줘요.”
“자취생인데요, 화장실 곰팡이 좀 지워 주실 분?”
하지만 개인 간의 중고판매도 다양한 문제를 일으켰지만 문제를 해결하며 계속 유지가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에 대한 노력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온라인으로 다 옮겨가 버린 커뮤니티의 특성상 당근마켓이나 지역 카페도 이용하지 못해 이전보다 더 소외가 된 어르신들을 우리가 보듬을 수 있는 방법, 함께 상생해 갈 수 있는 방법들은 또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