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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Jul 04. 2023

엄하게 키워 놓은 귀한 딸


 대한민국 한 해 실종자 수가 2000명이 웃돈다고 한다. 사망하였거나 미발견된 통계만 추린 것이다. 어림잡아 매일 5명 씩 영영 사라진다는 얘기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실종자의 과반수 이상이 여자다. 이 치안이 훌륭하다고 소문난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매일 매일 사라진 다섯 명의 사람들은 어디로 간걸까.

 한 해 평균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3000여 명 전후라고 한다. 교통사고 버금가게 많은 것이 실종이다. 사람조심 차조심 하라는 아빠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아빠는 날 엄청 엄하게 키웠다. 나는 대표적인 K장녀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10시 이전 통금, 외박 절대 금지. 딴 애들은 술 마시고 바닥에 엎어져 자고도 다음 날 멀쩡하던데. 나는 친구들이 사고가 나지 않아 멀쩡한 게 다행한 게 아니라 아빠한테 맞아 죽지 않는 게 신기했다. 나에겐 그런 것들이 하나도 허용되지 않았다.

 아직도 친구들에게 놀림 받는 일이 있다. 고3 때 전국의 운동하는 친구들이 부산 해운대에 모였는데, 친구들이 모래사장에서 밤새 놀 때 나는 막차 타고 집에 갔다가 첫차 타고 다시 해운대로 간 것이다. 외박을 허용하지 않는 아버지와, 그 와중에 놀아 보겠다고 막차와 첫차를 부지런히 타고 오간 나는, 너만 공주님이냐며 아직도 잊을 만하면 회자 되곤 한다.     


 대학생이 되어 북경체육대학교에 유학을 갔다. 유학을 가면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내 멋대로 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중국에는 뉴스에 절대 내보내지 않는, 실 경험자들이 입으로 전한 뉴스들이 떠돌았는데, 학교 앞 하천에 시체가 떴다거나,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칼부림이 나,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아파트 복도에 피가 흥건했다는 흉흉한 얘기들이 돌았다. 내가 아는 정도가 이만큼인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 중 한 다리 건너 아는 지인이 실종 되어 며칠 후에 쓰레기 통에서 발견 되었다는 말은 너무나 무서웠다. 배가 갈라져 있었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가족들이 와서 시신을 수습해 갔다고 했다. 나는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살았다. 마침 나와 친하던 중국의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저녁 9시50분이 되면 복도로 일렬로 나와 출결체크를 하고 새벽 6시마다 일어나서 똑같은 보고를 한 후 아침운동을 해야 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유학생들도 많았지만, 유학 가서 한국인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중국어는 안 늘고 한국어만 늘어온다는 말에 지레 겁먹고 한국 유학생들을 슬슬 피해 다니는 편이었다. 중국 친구들은 외국인인 나에게 타깃이 될 수 있으니 더욱 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나는 일부러 옷차림을 더 추레하게 다니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노력을 놓지 않았다. 유학생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유학이 끝날 때까지 심심찮게 들려왔다. 더러는 한국 뉴스에 유학생들의 문란한 생활이 방송으로 나가기도 않는데, 그럼 아빠는 국제 전화를 걸어와 또 그 예의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 일곱이 되어 서울에 혼자 살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놀지 않아 놀 줄을 몰랐던지 또래 친구들이 홍대에 가자, 강남에 가자 꼬드겨 보아도, 잘 놀 줄을 몰랐고, 시끄럽고 정신 없는 분위기에 슬그머니 먼저 빠져 나오곤 했다. 객기로 마셨던 술도 일절 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골로 이사를 오며 더 심심한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이 시골에는 CCTV가 적어 논두렁에 묻어 버리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역시나 회사와 집만 오가며 바른생활을 하고 있다. 시골이라 밤에 나가서 놀 수 있는 곳도 없다.


 최근 나는 원주의 토지문화관에서 세 달 동안 글을 쓰는 기회를 얻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분위기에 글이 술술 써졌다.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밤에는 개구리가 개골개골. 가끔 자지러지게 울어주는 고라니 소리까지. 자연이 주는 ASMR에 집중도도 높고, 낮에 이불을 널어 놓으면 햇볕을 가득 머금은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이렇게 깨끗한 지역에 뱀이 출몰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5월이 중순이 되고부터 뱀을 발견했다는 작가님들의 제보가 하루에 한 건씩 꼭 나왔다. 내가 살던 귀래관에서 본관의 식당을 이용하려면 숲으로 낸 오솔길을 걸어야 하는데, 그 곳이 똬리 튼 뱀들의 주 출몰지였다. 우리 회사 브랜드 ‘스칸다’의 로고가 뱀 형상일 만큼 뱀 모양은 매일 접하는 것이지만, 발 앞에서 기어다니는 뱀을 마주할까봐 겁을 잔뜩 먹게 되었다. 미키마우스를 좋아한다고 집에 쥐가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매일 정문으로 돌아서 식당에 갔다. 날이 더운 날에는 햇볕도 강하고, 한 번 다녀오면 땀이 흠뻑 났지만 그럼에도 뱀이 너무 싫었기에 피해 다녔다. 그래서 결국 퇴소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뱀을 마주치지 않았다.   

   

 커 보니 아빠가 이해가 되는 것이 세상이 정말 흉흉해서 별의 별 사고가 나는데, 그 많은 사고들 중에서 그것이 내 딸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었다는 걸 알겠다. 아빠는, 나에게 뱀을 마주치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같다. 뱀을 보기 전까지는 뱀이 징그러운 줄을 모르니 정문으로 돌아가는 수고를 하기 싫었을테다. 본 적 없는 뱀을 신경 쓰는 대신 숲길을 걸으면 빠르고 그늘도 지고 숲향기도 좋고, 눈 앞에서 날아가는 새를 볼 수도 있다. 범죄가 이렇게 많은 줄 모를 때에는 무서운 일들을 실감하지 못했기에,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을 몰라주는 아빠를 이해 못했다. 하지만,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묻지마 살인을 당한다거나, 오피스텔 1층에서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은 여학생의 이야기처럼 세상에는 예측하고 막을 수 없는 사건사고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세상을 바꿔 주면 가장 좋겠지만, 매일 걷는 원주의 오솔길에다 내 힘으로 시멘트를 깔아 뱀을 원천봉쇄할 수 없었던 것처럼, 당장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아빠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밤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것일 거다.


 혹시 내가 좀 늦거나 연락이 닿지 않으면 무슨 일 생긴 것은 아닌가 전전긍긍하며 키웠던 아빠가 유난스럽다며 짜증냈던 적이 많다. 하지만 크고 보니 나를 위해 밤낮 없이 걱정해 줄 사람이, 어쩌면 이 세상에 아빠 그리고 엄마 단 두 사람 밖에 없겠단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하며 살더라도, 아빠, 엄마의 귀한 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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