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베트남

학생 때는 외국에 가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by 전지연

2019. 4. 12. 3:15의 기록


학생 때는 외국에 가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특히 영국이 무척 가고 싶어서 친구들한테 언젠가 영국에서 공부하리라고 자주 얘기했었다.

고모네가 살고 있어서 꾸준히 보고 들은 것도 있었고 와서 디자인 공부하라는 얘기도 자주 하셨다.

마음을 굳게 먹어도 늘 어마어마한 비용이 문제였지만!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계기는 언젠가 기차 안에서 읽었던 글 때문이었다.

금요일 밤마다 영국 어느 카페에 잘 나간다는 디자이너들이 모여 디자인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다더라. 이 모임이 요즘 굉장히 핫하더라. 대충 그런 글이었다. 글을 읽는데 사랑하는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가 떠올랐다.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모여 자신의 작품과 시대를 진지하게 나누는 영화속 장면들이 떠올랐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막연하게 나도 그곳에 낄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하며 참 단순하게도 그래, 영국으로 가야지. 영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이 책 속의 디자이너들과 어울려야지 다짐 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론 신기하게도 별 생각이 안들었다. 오로지 외국으로 여행만 주구장창 다니고 싶었을 뿐. 6년이 흐르니 그 친구가 다시 찾아왔다. 일이 힘들 땐 이직이 떠올랐는데 일이 오래되니 유학이 반짝 떠올랐다. 지루한 패턴을 끊을 방법은 유학만이 유일했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유학하기에 딱 적당한 퇴직금과 돈이 모여 있었지만 너무 적당하기만 해서 돌아올 날을 떠올리면 불안했다. 돌아오지 않고 취직까지 해야지 생각해도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는 걱정하게 되니까.

혼자 오래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말했더니 이래저래 고민만 하지 말고 떠나라고 했다. 반대로 같은 고민을 들었을 때 조언을 해주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나였어도 당장 떠나라고 조언해 줄 것 같단 생각이 들자 이건 떠나는 게 맞는 일이구나! 싶었다.

곧바로 유학과 관련된 책들을 사고 유학원에 상담도 예약했다.

이상하게 영국은 떠오르지 않았고 오로지 뉴욕만을 외치며 유학원으로 갔다. 기대도 잠시.

미국은 나처럼 돌아올 예정 없이 떠나는 경우, 비자 받기가 특히 까다롭고 인터뷰 때 까딱 잘못 하면 10년 간 미국땅을 밟을 수조차 없다고 겁을 줬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데 인터뷰부터 불안하다니. 3달인 지 6달인 지 12달인지에 따라 어떤 학교에서 어떤 과정을 공부할 지와 어떤 어학원을 다니면서 어디서 지낼 것인지 같은 것들을 예산 안에서 계획해줬다. 선택지는 많은듯 적고, 적은듯 많았다.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한 후 뉴욕으로 가는 건 어떤 지 같은 대안의 방법들도 몇 가지 더 알려줬고 들을수록 마음이 복잡해지고 어려웠다.

부풀었던 기대와 달리 어쩐지 당장 떠나지 못할 것만 같아 울적했고 그 상태로 남자친구를 만났다.

홍콩 발령으로 떠나기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내 얘기를 듣자 덜컥 홍콩으로 오라고 했다. 이런 저런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라는 달콤한 말들이었다. 사실상 프로포즈였고 긴 대화 끝에 일년 정도 준비도 하고 하던 일도 잘 마무리해서 홍콩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해버렸다. 이후 퇴근 후에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름 부지런히 어학원을 3개월 쯤 다녔을 때였나보다. 회사에서 갑작스럽게 해외 진출 이야기가 나왔다. 누구든 갈 생각이 있으면 내일 당장 결정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결혼이라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깊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일단 회사에서 해외 진출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지원해야지 굳게 마음 먹은 바가 있었고, 작년의 나는 떠나고 싶어 안달나 있었다.

홍콩에서의 신혼생활도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다. 이런 내 성격을 잘 아는 남자친구는 그저 수긍하고 응원해줬다.

해외 진출에 무조건 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스타트업에서 지금 규모에 이르기까지 구른 잔뼈가 있어서 나름 자신도 있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기회에 내가 가진 능력을 더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지가 베트남으로 결정됐고 나의 파견도 결정됐다. 뛸뜻이 기뻤다. 고생길은 훤-했지만.

파견 결정 이후, 하루는 밥을 먹는데 한 회사 동료가 ‘지연님은 우리 회사에서 재밌는 일은 혼자 다하네요’ 라는 얘길 던졌다. 농담인지 불만인지 모르겠지만 맞는 얘기였다. 다른 사람의 일이나 기회를 뺏었다면 비난받아야겠지만 누가 이 일을 하겠냐 물어볼 때 내가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으면 그저 손을 들었으니까. 그래서 같은 일을 해도 더 재밌어보였을 지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상상하던 영국이나 뉴욕, 홍콩이 아니라 베트남으로 오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지루했던 일상의 패턴 따위 사라지고 내가 가진 새로운 한계점을 많이 느낀다. 디자인도 영어도 베트남어도 사람도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어서 감정은 자주 롤러코스터를 탄다. 유학을 갔더라면 혹은 무방비하게 홍콩을 갔더라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지금 여기서 이렇게 시작하게 된 게 얼마나 행운이고 다행인 지!

#베트남 #노동자 #디자이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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