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짝, 세 짝, ...
2019. 8. 27. 0:32의 기록
베트남에서 일년이 지난 지금 더이상 깜-짝 놀랄만한 일은 없지만 여전히 놀랄 일은 있다.
그 중 하나가 도로에 떨어진 갖가지 것들이다.
좁은 도로보다는 너른 도로로 갈수록 더 자주 더 많이 바닥에 나뒹구는 아이템들을 만나게 된다. 가장 많은 것이 신발, 그 다음이 마스크, 모자 순이다. (그 외에도 다양하다.)
한국의 도로에서 신발이 나뒹굴었다면 사람들은 대게 그 길에서 일어났을 끔찍한 장면을 상상하며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선 갓 게임을 시작한 캐릭터가 마을을 다니며 줍는 기초 아이템 수준으로 흔하게 볼 수 있다.
여느날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마주한 멀쩡한 슬리퍼를 보니 대충 이런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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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 수 있는 한 속도(그래봤자 3-40키로겠지만)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도로가 갑자기 좁아지는 구간에 다다라 차와 오토바이들이 모이고 속도를 줄여야 한다. 제빨리 발을 제대로 모으고 멈추려 하는데 헐떡이며 신고 있던 슬리퍼가 오토바이 밖으로 나뒹굴며 떨어진다. 앞으로 가던 속도 때문에 곧바로 멈추진 못하고 아차 하는 순간 2미터 이상 멀어졌다.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주변으로 오토바이로 가득 메워져 있어 슬리퍼가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찾아 보려면 지금 서있는 도로 한복판에 오토바이를 세워야 한다. 뙤약볕이 내리쪼고 있다. 사방에 도사린 마후라 커버와 사이드 미러로 태양빛이 반사되어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든 와중에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마저 정신을 어지럽게 한다. 꼭 주워야 할까? 까짓거 한켤레 더 사지. 몇 초 안에 빠른 판단을 내리고 가던 길을 내달린다. 도로에 남겨진 주인 잃은 슬리퍼 한 짝은 연이어 바퀴에 치이고 치이다 슬픈 운명을 맞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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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발 중에서도 아주 어린 아이들의 신발이 많다. 앞으로 안고 뒤로는 묶어 태우고 다니는 어린 아이들은 그저 신나게 발을 흔들어 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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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아주 멀쩡한 핑크색 하이힐 한짝을 봤다. 슬리퍼를 잃은 것에 비하면 신발의 주인은 아주 슬펐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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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일회용. 하나는 깊고 너른 디자인의 도톰한 천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 건 무한대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 마스크가 떨어져 있으면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 뒷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뒷자리는 거진 바람 소리 때문에 앞사람의 이야기가 잘 안들린다. 답답해서 안들린다고 소리치자 마스크를 벗고 얘기를 시작하려 하는데 실수로 놓쳐버리는 거다.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법인데 여기 사람들은 워낙 밀접하다보니 그 점을 자주 간과한다. 커피도 마시고 한손에 물건을 들고 한손으로 운전하기도 한다. 아침에 자주 보는 분 중 한 분은 목발을 짚고 한 손으로 운전하시는데 휘청하며 목발로 바닥을 디딜때마다 나도 덩달아 긴장하게 된다.
어찌됐건 길에 떨어진 옷가지들은 여전히 나에게 신비한 존재다. 실제로 어떻게 벗겨지는 지 날아가는 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상상 속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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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를 떨어뜨린 이에게는 자비란 없다. 헬멧을 안쓴 자의 말로이기 때문이다. 가끔 모자를 쓰고 그 위에 크고 헐거운 헬멧을 쓰면 강한 바람에 헬멧이 붕뜨고 겨우 턱에 끼워둔 후크로 메달려있을 때가 있다. 그럼 그속에서 캡모자가 붕뜨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캡모자가 나뒹군다면 필시 안전불감증을 가진 이의 것일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