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8. 19:02의 기록
운
1.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천운과 기수
2. 어떤 일이 잘 이루어지는 운수
초년에 운이 좋은 사람, 말년에 운이 좋은 사람
늘 소소하게 운이 따르는 사람
늘상 본인은 운이 더럽게도 없다고 자조하는 사람
내 경우엔 주변 사람들이 나를 당첨운이 무척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컨퍼런스를 가면 명함이 당첨되고 혹은 안챙겨가서 옆사람 명함을 빌려 넣어도 당첨되는 식이다.
어디서든 뽑기나 추첨을 하면 이상하게 자주 당첨되곤 했다. 이번에는 설마 아니겠지 또 나려고?라고 생각하는 중에도 곧 내 이름을 불렀고 주변 반응 역시 또야?였다. 그런 몇 번의 크고 작은 기회에 운이 좋았던 사건들은 여지껏 나를 운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게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에 덜컥 덜컥 당첨되어버릴 때마다 정작 불안해졌다. 인간의 운에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나는 이런 소소한 것에 쓸데없이 다 써버리는 게 아닐까. 내가 나중에 큰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라는 우스운 걱정마저.
그러는 와중에도 머피의 법칙이 성립했던 것이. 내 스스로 착하게 살고 있다고 뿌듯한 생각을 할 때라거나 혹은 저걸 받는다면 좋은데 써야지 라는 생각을 하거나 하면, 꼭 당첨되는 거다.
마치 누군가 보고 듣고 있는 것처럼.
맥락은 없지만 미신에 힘을 싣어 보자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이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그 시절에는 내 방이 남아 있을 때라 방구석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것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전반적으로는 무척이나 무료한 날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가족이랑 방학을 보내는 것에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없었던 때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에 꽤 행복했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괜시리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자주 나서 자주 기도를 드렸었는데 그 즈음 어느 날 꿈에 나오시더니 로또 숫자를 불러주셨다.
네? 갑자기요?
꿈임에도 너무 놀라서 화들짝 잠에서 깼는데 눈을 뜨니 막상 너무 졸려 다시 잠들지 않고는 못 베길 지경이었다. 눈꺼풀 아래로 깊은 잠의 블랙홀이 느껴져서 어쩔 수 없이 타협안으로 숫자를 세 번 되뇌이고 잠들자 생각했다. 세 번 외우고 나니 이정도면 잠에서 깨도 기억이 나겠다 싶어 다시 잠들었는데 왠열, 단 한 자리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엔 곧이어 흑돼지 새끼가 내 품으로 달려드는 꿈을 꿨다.
당장에 로또를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도 단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던 터라 슈퍼에 가 어떻게 사야하는 지도 모르고, 그런 과정을 생각하면 좀 쑥쓰러웠다. 그래서 바쁠 일 없는 일상에도 미루고 미뤄 1주일이 지났을 때 즈음, 굳게 마음을 먹고 아무 숫자를 써내려 샀는데 5천원이 당첨되었다.
첫 로또에 5천원이면 그마저도 운이 조금 작용했던 것 같다. 돈으로 바꾸는 것을 잊어 현금을 만져보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가 건네준 로또번호와 흑돼지(할아버지가 보낸 돼지라고 믿고 있다)의 운이 100으로 가득했을 때 샀더라면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메모지에만 옮기고 잤더라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그 때의 빅 운을 아껴둔 덕으로 그 후에 닥쳤던 어려운 일들이 잘 풀렸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마냥 운에 기대는 건 어리석은 느낌이지만 그 마저도 없다고 생각하면 포춘 쿠키같은 재미가 사라져버릴테니까 믿고 싶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총량이 같아서 모두가 각자 다른 시기와 크기로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