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동산

by 전지연

2020. 3. 8. 20:49의 기록



지난주 저녁을 먹다 스쳐 지나간 이야기.

내일을 생각하면 젊은이고 과거를 생각하면 늙은이다라는데.

우리가 진짜 나이 든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언제야? 라는 주제였다.

나는 번뜩 놀이동산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놀이동산이 내게 줬던 쾌감을 숫자로 표현하면 100점 만점에 200점이었다. 부산에서 유명한 작은 놀이동산은 산위에 있어 버스에서 내리고도 삼사십분 넘게 걸어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길도 투스텝이 기본이었고, 스스로 징하게 느껴질만큼 개장 때 들어가서 폐장까지 타고 또 탔다. 그래도 질리지 않았다. 특히나 날씨가 추워서 경쟁자들이 적은 날에는 놀이동산의 꽃인 청룡열차를 연달아 타재꼈고 드러난 살갗이란 살갗은 꽁꽁 얼었지만 마치 훈장인냥 뿌듯했다. 츄러스나 부실한 햄버거따위를 먹고도 에너지가 넘쳐 뛰어다닐수 있었던 그리운 에너자이저 시절이여.

계속해서 텐션이 맥시멈인 채로 놀다 혹시 같이간 언니나 오빠가 지치지 않았나 눈빛을 살피곤 했는데 지치지 않았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사촌 오빠는 가끔 집에가자 투정하기도 했다. 우리 자매를 이길 순 없었지만!) 놀이동산을 나올 때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가 너덜너덜하고 온몸이 뻐근한 느낌이 들면 그조차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70점도 후하려나.

가는 길부터 멀단 생각이 들어 귀찮고 한시간씩 줄 서 기다리는게 목이며 어깨며 다리며 심히 피곤할텐데, 심지어 애써 탄 기구는 나에게 짧디 짧은 기쁨을 준 후 눈깜짝할 새에 다시 출발지에 데려다 놓을텐데 굳이? 같은 생각이 들어버리는 거다.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마이너스 점수가 더해진다.

고생하고 긴 기다림 끝에 얻는 행복보다는 편하고 소소하게 오래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종류를 이미 많이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쇼파에 늘어져 ‘아직도 이 프로그램을 시청중인 것 맞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넷플릭스에게 네 당연하죠라고 말하며 네 버튼을 얼른 누르며 뒹구는 행복 같은 거. 어른은 이럴 때 참 공허하면서도 편안한 것 같다. 앞으로도 더 작고 더 소박한 행복의 종류와 즐거움을 찾아내겠지.

놀이동산에 간다면 갈 때마다 그때의 깔깔 웃음과 뿜어 넘치던 도파민이 그리워 기억과 감정을 더듬어보겠지만. 다시는 갖지 못할테니 더 그립고 아름다운 거라며. 아쉬울수록 그리울수록 가치가 더해가는 소중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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