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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Jun 01. 2023

좋은 죽음 말고, 자유로운 죽음을

마음챙김명상


공공대학원 졸업 전에 꼭 듣고 싶은 수업이 있었다.


《호스피스》. 개인적으로 죽음 주제를 탐구하다가 가닿은 키워드였는데 아쉽게도 코로나19 펜데믹이 깊어지면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다 올해 뜻밖에 보석과 같은 강의를 만났다. 간호행정 전공의 《마음챙김명상》. 처음엔 학기니 쉬어가자하고 관심을 가졌는데, 부교재 《죽음을 명상하다》를 발견하고 단박에 신청했다.






명상은 ....


수업의 감각을 생생히 기억한다. 스무명 남짓 강의실에 빙 둘러 앉아 허리를 세우고 발바닥을 땅에 붙인뒤 첫 명상을 청했다. 청동소리와 김정숙 교수님의 안내로 인도된 첫 명상에서 양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올랐었다.


강의는 실천과 자각이 앞서고 기본 이론덧대는 구성으로 진행됐다. 백미는 35일간의 명상 일지 기록. 호흡, 통증, 감각, 생각 등 공식 명상 하나와, 다양한 일상에서 깨어있음과 알아차림을 실험하는 일상 명상 하나를 매일 한 세트씩 진행하는 것이었다. 설거지, 운전, 화장실에서 명상님을 찾는 여정이란... 꽤 어렵고도 즐거웠다.


13주에 접어드니 비로소 "명상은 알아차림"이라던 교수님의 말씀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다. 과제로 대할땐 잘 몰랐는데, 그 훈련 덕분에 이제는 주문을 외우듯 자연스럽게 일상에 알아차림을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 오후 4시 산책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것이 걷기 명상의 방편으로 활용해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ㅎ




좋은 죽음을 향한 좁은 길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연민, 자애, 죽음의 땅으로 향했다. 아직은 명상이 왜 죽음을 향하도록 경로설정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수업 초반부에 "자아는 없다" 자각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짐작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죽음이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의문은 자연스레 "좋은 죽음", "희망하는 죽음"이라는 가치적인 개념으로 발전했다. 세계의 아름다운 공동묘지, 살아있는 장례식, 안락사, 조력자살, 완화의료, 호스피스 등을 거쳐 이제 명상으로 나아가는가 생각하던 즈음 뒤통수를 맞았다.


우리가 “좋은 죽음”을 강하게 기대할 때,
어떻게 자유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죽음에게 자유를


기말 과제는 《죽음을 명상하다》를 읽고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짧은 에세이였다.  질문을 받았을 때 정말이지 머리가 띵했다. 좋은 죽음이란 사실 불가능한 것이었다. 병원이 아니어야 하고,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하고, 의식이 있어야 하며, 소중한 이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죽음이란 녀석이 그렇게 정중하고 예의바른 녀석이던가? ㅎㅎ


내 주변의 죽음은 참으로 지루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예고없이 하루아침의 사건으로 벌어졌다. 사실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그런 무례한 죽음에 분노하거나 좌절해야 할까? 그러면 결국 인생의 클로징컷 대부분이 실패로 귀결되도록 바라만봐야할까?


나는 내 죽음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소중한 이들은 잘 보내드리고 싶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이라는 공식을... 버려야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직은 자유로운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죽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도. 그런 죽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도. 다만 늘 그렇듯이 비로소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선 기분이다.


도달점은 어디일지 모르겠지만 그 길위에서 수 많은 간호사 우들 중 한둘은 다시 만나지 않을까 생각하니,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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