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엉군 Apr 10. 2024

미국쥐 불광천


나 7시 50분에 일어나서 오늘 계획 세웠어. 들어볼래?

뭔데?

도시락통 1층엔 김밥을 넣고, 2층엔 과자, 3층은 음...

... 그리고 어디 가고 싶은데?

어디든 좋아. 멀리 갈까?


태권도 승급 연습은 없고 거리에 봄내음 가득한 토요일 오전, 너는 안방으로 찾아와 숨가쁘게 떠들었다. 나들이엔 도시락통이지, 너스레 떨며.


우리는 불광천으로 향했다. 벚꽃은 있고 교통체증은 없는 옆동네. 가는길에 어린이 교통카드도 만들었다. 춘식이 행운부적으로. 그 어느때보다도 당당하게,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


아빠 거기는 임산부 자리야, 일어나 빨리!!!

......

아빠아아아아아!!!!!!!

......


한 정거장 남고 빈자리도 많아서 잠깐 엉덩이 붙였는데 네가 소리를 질렀다. 설명하자니 귀찮고 부끄럽기도 해서 창밖만 바라봤다. 흠흠.


불광천은 눈부셨다. 벚꽂도, 도시락도, 햇살도, 미키마우스도. 4월과 봄이 여기에 다 모여있었다. 우리도 다행히.


대림시장을 향해 걷는데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우리를 앞지르며, 미안해요, 하셨다. 작은 상황극을 주고받다 오전의 버스 에피소드로 살짝 넘어갔다.


아까 버스에서 소리 지르는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어떻게????

네가 일어나서 아빠한테 자리를 양보하며, 아빠 여기 앉아, 말했다면 사람들이 현대판 심청이라며 SNS에 올리지 않았을까?

ㅎㅎㅎ

네가 소리를 지른 바람에 아빠는 나쁜 사람이 되고, 너는 불효녀로 SNS에 올라갔을거야

ㅎㅎㅎㅎㅎㅎㅎㅎ


대림시장에서 피카츄, 김밥, 잔치국수,칼국수, 비냉을 해치우고, 불광동 노래방에서 2시간 난동부리고, 기어이 마라탕까지 포장하고 나서야 토요일 나들이가 끝났다.



#


찌익찍찍 찌익찍찍찍찍


다음날 일요일, 너는 다시 평화로운 집순이 미국쥐로 돌아왔다. 민쩌미 유튜브를 켜놓고 로블록스 하며 찍찍거리는 너. 네 웃음 소리에 우린, 미국쥐 나왔네, 하며 웃었다.


이 평화는 봄 덕분일까? 지난주 SLP 과정을 끝냈기 때문일까?마지막 하원을 하고 파티를 했던 금요일 저녁 달밤을 걸으며 너는 담담히 비밀 하나를 말해주었다.


아빠 난 써니란 이름 싫었어

왜?

써니는 너무 쎄보여

영화 때문인가?

난 리나, 문 같은 이름이 좋아

힘든 등하원길에 싫은 이름까지. 고생 많았네. 다음엔 네가 원하는 이름으로 정해


영어 숙제가 없는 일요일은 퍽 낯설다. 숙제를 둘러싼 그 지겨운 루틴이 얼마나 소중한 둘만의 시간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그래도 코로나 덕분에(?) 4년간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고생 많았어요.


성큼 걸어가는 네 유년 시절

 뒷모습을 바라본다.



미국쥐 행운부적


매거진의 이전글 우정반지 악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