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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Aug 07. 2024

기후 변화 적응


월요일



휴가 마지막 날, 우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감기에 걸려서, 더워서... 그래 더웠지. 선풍기가 돌고 있었지만 34도. 에어컨 기사님은 5시간후 도착. 그래서 꾀를 냈다.


병원은... 사람이 가장 많을 때 가자

왜?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에어컨 바람 더 쐐지

에에에ㅔㅔㅔ

학원도 30분 일찍 가는거 어때?

일찍 가서 뭐해?

멍하니 있어. 부럽다. 너 학원가는거 너무 부럽다

아빠도 갈래? ㅎㅎㅎ


밖이 더 시원했다. 병원을 갔다가, 정육점을 찍고 보리차랑 김밥을 사왔다. 날이 더워서인지 김밥이 잘 안넘어 갔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답게 헤어졌다. 곧 모든 상황이 정리될터이니.



저녁 9시



애타게 기다린 에어컨 기사님은 결국 오지 않았다. 눈치를 보다 강아지처럼 네게 말했다.


꼬맹, 오늘 에어컨 못 고칠거 같아. 미안

괜찮아

덥지 않겠어?

괜찮아.  이미 기후변화 적응했으니까

???????

그리고 어차피 안 쓰잖아

ㅠㅠㅠㅠㅠㅠㅜㅜ


으아아아아아. 2018년 폭염이 재현되고 온열환자가 급증하는 이 시국초3이 득도를 하다니. 나는 속으로 울었다. 내가 게으르고 못나서, 꼬맹이가 지구와 하나가 되어버렸다고. ㅠㅠ



화요일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하려했는데, 감사하게도 기사님께서 먼저 전화를 주셨다. 어제 차가 퍼져서 못 갔다고, 미리 연락을 못해 죄송하다고, 오늘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퇴근을 하니 집이 뽀송뽀송했다. 너도 활기찼다.


너 오늘 마스크 쓰고 자야겠다

왜?

에어컨 찬 바람이 코로 들어가면 목감기 걸린데. 그래서 뮤지컬 배우는 마스크 쓰고 잔데

에에에ㅔㅔㅔㅔㅔ 싫어 불편해


오랜만의 유쾌상쾌함. 씻고 머리를 말릴 때 네가 가만히 물었다.


아빠, 기후 변화하면 우린 다 죽어?

글쎄 빙하랑 만년설이 녹아 바닷물이 올라오면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은 그만큼 줄어들겠지?

만년설이 뭔데?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봉우리에 있는 눈이야. 예전 조선 시대에는 소빙하기가 와서 겨울이 아닌데도 우박이 떨어지고 얼어죽고 그랬대

난 내가 할 수 있는건 다하고 있는데

알지. 잘 하고 있지. 지구가 생명체라면 지구가 어떤 변화를 선택할지도 지켜보자



수요일



퇴근 길. 우리네 인간사를 웃어넘기듯 바람을 타고 입추님이 오셨. 그래... 햇님과 달님도 있으셨지.


네가 엄마가 될 미래의 여름은 어떤 모습일까?이틀간 기후변화 적응하느라 고생했다 꼬맹아. 천천히 좀 크자.



머리카락을 널고, 로블록스 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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