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엉군 Nov 03. 2024

머무는 자, 떠나는 자

설립자 영상 나레이션 녹음


이번주는 수상자 인터뷰(3건), 완도 사업 계약, 사옥 환경그래픽 발주, 설립자 영상 나레이션 녹음(3건)이 있었습니다. 그 중 설립자 영상 관련 일화를 기록합니다.





금요일 오전 10시, 설립자 영상을 위한 나레이션 녹음을 위해 세 분의 대우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2시간이면 충분할거라고 예상했습니다만 오산이었습니다.


두 분은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장 회장님은 평소에 보고드릴 일이 있었고, 김 회장님은 오가며 인사를 드렸기에 대우재단 사업에 협조적이셨으니까요. 하지만 윤 회장님은 처음 뵙기에 조금 긴장이 됐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영상 구성안을 설명드렸습니다. 윤 회장님의 나레이션 파트는 짧게 요약하면 '수출 대우'였습니다. 설명을 듣자마자 윤 회장님은 '수출'에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1960년대 후반) 당시에는 해외 시장에 직접 수출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지. 일본 상사나 오퍼상을 통해 수출해야 했어. 당시 상공부에서 한국 종합상사를 고민하고 있어서 같이 머리를 맞대고 그 걸 만들어 갔지. (이하 생략)

윤 회장님께서는 인트로에서 본인 파트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체크를 하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나레이션을 해야하는데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언어로는 진행하지 않겠다 하셨죠. 정확한 분이셨습니다. 다른 날을 잡아야 하나 했는데, 흔쾌히도 "샌드위치 먹으면서 다시 작성하고 오늘 하고 가지"하셔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김우중 회장님의 사재 출연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회장님하고 35년 00개월을 함께 했어." 대우그룹이 35년을 채우지 못했으니, 두 분의 인연은 대우보다도 깊은 셈이었습니다.


전 재산을 환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여기서 중요한 건 회장님이 30대 후반에 '마흔이 되기전에 모든 재산을 환원하겠다'고 결심하고, 그걸 직원들을 모아 놓고 직접 발표했다는 거야. 회장님은 그 때 이미 소유보다 성취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거야. 가족들도 대우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다른 기업들은 상속이다 뭐다 시끄러운데 말야.


윤 회장님은 수정할 때마다 "그게 임팩트가 있나?" "그게 정확한가?" 물으시며 언어의 정확도를 좁혀나갔습니다. 1시까지 수정하고 나서야 OK하시고는 녹음에 들어갔죠. 결국 회장님들 나레이션 녹음에 총 5시간이 걸렸습니다.





설립자 영상을 준비하며 대런 애쓰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었습니다. 회장님의 오지 개척 신화에서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회장님과 대우맨의 개척 정신이 탁월했다해도 '미수교국 진출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미수교국에는 아프리카만 있는게 아니라 중국, 베트남, 체코 등 공산국이 있는데, 반공일색이었던 군부 정권 시절에 감히??? 정부가 뒷배가 되어주지 않는한 상상도 못 할 일이 아닐까 짐작했던 겁니다.


그런 질문을 품고 있던 제게 대런 애쓰모글루는 전성기 베네치아의 계약 혁신을 들려주었습니다.


(12~13세기) 베네치아의 경제가 확대될 수 있었던 토대 중 하나는 경제제도를 한층 포용적인 방향으로 이끌던 잇따른 계약 혁신이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코멘다 commenda'라는 초기 형태의 합자회사로 단 한번의 무역거래를 위해 수립되는 위탁계약이었다. 코멘다는 두 명의 파트너가 참여하는데 그 중 하나는 베네치아에 '머물러' 있고 다른 하나는 무역을 하러 여행을 '떠나야' 했다. ... 돈이 없는 젊은 사업가라면 상품을 위탁받아 여행을 떠남으로써 무역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이는 신분 상승을 도모할 수 있는 주요 수단 중 하나였다.
- 대런 애쓰모글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p.226


두 명의 파트너. 저는 여기에서 한국에 머물며 뒷배가 되어준 정부와 해외 시장을 개척하러 떠나는 대우맨들이 그려졌습니다. 아마 두 파트너는 대한민국의 신분 상승을 도모하는 꿈을 공유했겠죠. 당시 군부 정권이었음에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제한적이지만 포용적 경제제도를 취한 것이 놀랍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질문을 품은 채 옛이야기들을 버무리며 설립자 영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 나와서 담백한 후기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우엉우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