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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용지용 Jan 15. 2024

생활양식으로서의 無와 비움

법정스님 수필집 <무소유>를 읽고

현대는 범람의 시대다.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상품들이 유통되고, 평생 익혀도 다 익히지 못할 지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학습력을 보이고 있다. 어디서나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얇디얇은 벽 하나만 건너면 '이웃'이 있으며 그 목소리까지도 집안에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넘치는 물건, 지식, 관계의 양만큼 행복도 넘쳐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미 생활하기에 충분한 물건을 가졌음에도 무언가를 갈구하고, 넘쳐나는 정보의 바닷속에서도 갈 길을 헤매며, 시끄러운 이웃의 소음 속에서도 혼자임을 괴로워한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회귀하길 권고하는 책이다. 현대인이 겪는 대부분의 고뇌는 무언가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의 과잉으로 인해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고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선, 무언가를 채우고 쌓으려고 하는 有為의 정신이 아닌 비우고 없애는 無為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물건을 갖고 있음에도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 그로 인해 소유욕과 관련한 여러 가지 번뇌가 생기게 되는데, 남들과 비교를 하고 한정된 재화를 뺏기도 하며 불필요한 근심을 하기도 한다. 만약 애지중지하던 물건이 도둑이라도 맞는다면 물건도 물건이지만 정신적인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이것은 이중 손상을 입는 셈이니, 사람이 물건의 주인인지, 물건이 사람의 주인인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만약 불필요한 소유욕이 없다면 어떨까? 삶의 진정한 주인 자리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삶이란 채우기보단 비울 때 오히려 자유롭고 풍성해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버스 안에서였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더니 창틀에서 빠지려는 나사못 두 개를 죄어 놓았다. 무심히 보고 있던 나는 속으로 감동했다. 그는 이렇듯 사소한 일로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에게는 내 것이네 남의 것이네 하는 분별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도 자기 소유가 아니다. 그는 실로 이 세상의 주인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76~77p.

지식과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더 많이 찾아 읽고, 소통이 안되는 상황에서 더 많이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내성(内省)을 거치지 않은 지식이란 한낱 시험이나 치르기 위한 헛지식이며, 기나긴 침묵으로 살이 차오르지  않은 발언들은 참말이 아닌 소음이 되기 마련이다. 때로는 많이 읽고 많이 말하는 대신에 적게 읽고 적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

외부의 소음으로 자기 내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현대인의 비극이다. 설사 행동반경이 달나라에까지 확대됐다 할지라도 구심求心을 잃은 행동은 하나의 충동에 불과하다.

(...)

자기 언어와 사고를 빼앗긴 일상의 우리들은 도도히 흐르는 소음의 물결에 편승하여 어디론지 모르게 흘러가고 있다.

150p.

물론, 적게 가지고 적게 읽고 적게 말하는 것의 핵심이 '적음'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높은 차원에 있는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무턱대고 물건을 적게 가지거나 책을 팽개치거나 침묵만을 고수한다고 해서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

재물욕, 지식욕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사람의 욕망 중 제일은 인정욕구와 사랑 욕구일 것이다. 우리는 고독감에 시달릴 때 반사적으로 나를 알아줄 누군가를 찾아 소유하려 든다. 하지만 本來無一物,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혼자였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나의 재산, 나의 지식, 나의 말, 나의 몸뚱어리마저도 내 것이 아니거늘 어찌 다른 사람을 소유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각별한 사이라도  타인은 타인이지 자신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구원해 줄 것으로 보이는 그 누군가에 대한 덧없는 집착을 버리고, 튼튼하고 풍만한 자신만의 고독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쓸쓸한 고독감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열쇠는 역설적으로 고독에 있는 것이다. <장자>에 나오는 마른 웅덩이의 물고기 이야기처럼...


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샘이 말라붙으면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들이 습기를 뿜어내며 서로를 거품으로 적셔준다. 하지만 그보단 넓은 강과 호수로 돌아가 서로의 존재를 잊는 것이 낫다.

<장자> 대종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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