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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예권슬 Aug 30. 2020

평등의 목소리

불편한 현실이 우리를 기어이 불편하게 만들 때 사람들은 비로소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힘없는 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이방인이고, 여성이기 때문이다. 쟤는 유난이네, 호들갑이야, 뭐 저렇게 피곤하게 살아. 혹은 그러나 저러나 불공평이 넘치는 세상에서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는 작은 아시안 여성으로 남던지. 그러나 그렇게 호들갑이라도 좀 떨어야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외국인 남자와 결혼을 하면 어울리지 않는 외국 성을 내 이름과 섞어 어찌 됐든 얼버무려야 하나 고민을 했다. 난 내 성을 지킬 테야 라며 박박 우겼다가, 외국에서는 왜 그렇게들 패밀리 네임에 유난인가 또 잠시 생각하다가, 어느 정도 가족으로서의 성을 통합하는 것에 면역이 생길 즈음에 두 번째 결혼을 했고 내가 사는 동네 법에 따르면 내 성을 남편 성으로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이름과 이 외국인의 성을 어떠한 순서로 합쳐야 하는지 어떤 정렬이 보기 좋을지 생각할 일도 없이 내 이름 그대로 적은 서류에 서명을 했다.  


이 곳에서는 법적으로 혼인한 여성이 남편의 성을 쓸 수가 없다. 성평등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주에서 결혼을 하고 남편 성을 공식적으로 가져오더라도 이 곳에 거주한다면 태어나면서부터 가져온 성 만을 쓸 수 있다. 오히려 정부에서 이렇게 호들갑을 대차게 떨어주니 너무 과한 처사라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대를 역행해서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것이라는 말도 한다.

나는 남편 성을 추가하고 싶은데? 왜 안 되나요? 이 곳에선 페미니즘, 그보다 한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행위라며 민주주의의 잣대를 들이댄다. 물론 한국에서 지금 한참 페미니즘이 급발전 중인 것과 다르게 두 단계 정도 앞서긴 했다. 그러나 함정은 법적으로 보호받아야만 지켜지는 여성의 권리가 현실에서 아직까지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그것이 힘 있는 사람들이 결국 힘을 쓰는 이유이다. 

건너 듣기로는 요즘은 미국에서도 남편성을 따르는건 옛날일이라던데. 주정부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아이들에게 두 가지 성을 다 물려줄 경우에 아이들이 그 성을 어떻게 선택하는지, 그 자녀의 자녀에게까지 어떻게 내려가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두었다. 그리하여 나의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의 성을 합쳐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성을 하나씩 떼어 붙여쓸지, 합쳐서 아예 새로운 가족의 성을 탄생시킬지 그 선택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문득 한국의서의 현실이 궁금해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려본다. 엄마의 성을 따르면 아빠가 없는 줄 안대요, 정상적인 가족이라면 아빠의 성을 따르는게 맞아요. 사회의 통념이란게 그렇것이니까. 

합법적으로 모의 성을 따르는 것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마의 성을 아이에게 주는 것은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식이었다.  모든 부모는 평등하며 그 평등한 권리를 나누고 동등한 출산과 양육을 이어가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 한국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부'의 자격으로 아빠의 성을 따르고 그것이 집안의 대를 잇는거라면,  출산과 양육의 평등을 나눠가진 '모'의 자격은 어디쯤 와있는 걸까?



나는 같은 성(sex)을 가진이들이 합법적으로 결혼을 하고 트랜스 젠더가 시장에 당선되는 동네에서 산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오래된 통념인 가부장의 유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저 공평한 책임을 가진 부모만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낳은 아이는 당신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니기에 나만의 성을 물려주는 것 또한 나의 소유욕은 아니다. 세상이 말하는 같은 성 씨 아래 통합된 가족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진정 ‘성을 가져가는 싸움'의 목적이라면, 그 공평한 책임과 부모에 대한 무게를 지우게 하기 위해 엄마와 아빠의 성 모두가 필요한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엄마와 아빠의 평등한 아이덴티티를 넘겨주듯이.


전통을 거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끝없이 사유하고, 고민하고 따져야 한다. 그러나 나보다 조금 더 강한 힘을 가진 자가 그것을 귀담아듣고 더 이상 기득권의 힘을 누리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는다면 비로소 문제는 한결 더 쉬워진다. 그러니까 사실 진짜 중요한 건, 우리는 좀 잘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엄마 성을 가졌건 아빠 성을 가졌건, 혹은, 우리가 같은 성을 가지지 않은 혈육이 아니어도 가족이 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나는  증명해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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