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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이랑 Jul 05. 2021

영어 만나기

집에서 영어하기2

믿음이 없었다. 영어를 모국어 배우듯 배울 수 있다는 가설을 믿고 가기에는 아이의 인생을 두고 도박하는 것 같았다.  과학적으로 그 가설이 설명될 수 있을지 많은 책과 정보를 찾아보았다. 아이들의 미래를 두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디즈니 만화처럼 모든 사물과 동식물에 이름 붙이고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다못해 집의 전선을 갉아먹은 생쥐에게도.... 나도 영어에 나름 인격을 부여하고 싶다. 30년 나의 교육철학을 뒤집어 놓았기에...

어쨌든 우리와 함께 한 그 녀석은 나에게는 교육 성공이라는 자신감을 아이들에게는 전 세계와 소통하는 훌륭한 도구를 만들어 주었다.           


큰아이가 유치원 다닐 즈음 영어라는 아이는 우리 집에 쳐들어와서 나의 영혼과 아이의 정신을 생쥐처럼 갉아먹었다. 영어유치원이라는 희한한 교육기관을 들먹이며 허영심에 들뜨게 만들었다. 일반 유치원과 다르게 예쁘고 편해 보이는 유치원복과 체육복과 가방 게다가 화려하면서 자극이 없는 교실 인테리어. 여기저기 깔맞춤 한 학습 도구들이 마치 우리 아이를 한 단계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시켜줄 것 같았다. 게다가 수업료가 저렴하지 않다 보니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듯 착각이 들었고, 아이들의 생활모습도 왠지 좋아 보이고 당당해 보였다. 영어를 쓰는 선생님들은 유학파 선생님들과 원어민 선생님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 외국에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영어는 그곳에서 최강의 파워를 자랑하며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영어로 통했다. 인성교육과 신체 놀이, 식사시간에도 영어만 잘하면 되었다. 그곳에 나는 혼이 나간 듯 아이를 보냈다. 아이는 불평 없이 잘 다녔지만 영어는 늘지 않았다.  허탈했다.     



아이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친구들이 영어학원을 다니며 영어책을 읽을 때 글이 빽빽한 모국어 책을 다양하게 읽어댔다. 아이들은 비 오는 날 보고 싶은 책과 눈 오는 날 보고 싶은 책이 달랐고, 그때그때 자신의 마음과 일치하는 책을 보며 자신을 위로하며 친구로 삼으며 책과 소통하고 있었다.

 철없는 엄마는 이런 아이를 보며 더 많이 읽도록 전집 구입을 서슴없이 했다. 전집 구입에 대한 많은 찬반의 이야기들이 나올 때였지만 난 그냥 강행했다. 나는 아이들이 50권 전집 속에서 10권을 즐겨 읽을 수 있다면 그 전집을 구입했다. 무슨 책이 좋은지 어떠한 책이 아이에게 맞는지 판단할 능력이 당시의 나에게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그림책에 대한 강의를 들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아이들을 기르면서야 비로소 교육에 대한 진정한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었다. 부모는 모두 교육자였던 것이다.

 아이들의 전집을 사대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는 부모로서 교사로서 배워야 할 것을 조금씩 배워 갔다. 각 전집 속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1-2권의 책을 고를 줄 알게 되었고, 그 책을 살피면서 그림책의 그림과 내용을 수업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좋아하는 그림작가의 그림책 계보를 알게 되었고, 그림작가의 특징과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시처럼 느껴지는 그림책의 글과 그림들이 나의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하였다. 지금은 성인이 된 아이들과 그림책 이야기를 할 때 즐겁다. 모두가 함께 본 그 책은 성인이 되어도 우리 가족을 묶는 끈이 되었다. 무식이 용감하다고 나의 전집 사재기는 결과적으로 성공한 셈이다.

전집 중 질이 다소 떨어지는 책들은 창고로 갔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내용이 좋으나 아이와 친구 되기를 거부한 책들은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 곳으로 갔다. 그렇게 걸러지다 보니 어느덧 정말로 나와 아이들이 아끼는 책들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 가족 중 그 책을 읽을 연령의 사람은 없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이 책들이 소중하다. 장식용이 되어 책장의 꼭대기에 먼지를 덮고 있지만, 꽂힌 그 책의 옆태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평소에는 꺼내보기가 잘 안되지만 청소를 할 때 사진첩 꺼내듯 과거를 소환하며 볼 때는 행복해진다. 아이들이 그 책을 읽을 때의 모습과 내가 그 책을 구입할 때의 열정과 계획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여간 나의 주책없는 그리고 모두가 공감하기 어려운 전집 구입에 대한 무용담은 바로 영어는 자신의 모국어라는 1차 관문을 통과하여야만 도전할 수 있는 녀석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적어보았다. 자신의 모국어에서 무너지면 영어라는 아이는 영원히 외국어에 머물러 멀고 먼 곳에 있어야 한다. 나의 언어에서 승리해야 외국어도 잡을 수 있다. 가장 쉽고 가장 깊게 나갈 수 있는 곳에 최선을 다해야 어설프고 어려운 것도 해 볼만 해진다. 가장 쉽고 가장 깊게 갈 수 있는 방법은 독서이다. 책은 모국어를 더욱 탄탄하게 해 주고 모국어로 쓰인 여러 설명들은 나의 생각과 언어에 대한 이해를 더 빠르고 깊게 해 준다.    

 모국어를 기반으로 한 학습능력과 글에 대한 이해력,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좋아지는 아이를 보면서 영어를 배우기 위한 1차 관문을 지나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와 서점을 갔다. 모국어 향상을 위한 1등 공신은 서점이었다. 수시로 드나들던 서점을 이번에는 영어학습을 위한 자료와 정보를 위해 들어갔다. 영어라는 아이를 만날 준비가 필요했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서점의 매대부터 흝어갔다. 엄마의 이런 비장함을 모르고 아이는 '와 서점이다.' 하며 동생과 새로운 책 사냥에 나섰다. 막내 늦둥이는 이러한 언니들이 사다 모은 책들을 서점을 안 가고도 읽고 있지만, 서점 속에서 책을 고르는 그 재미를 막내에게 주지 못함은 아쉽다. 요즘처럼 비대면 시대.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구입이 가능한 세상에  동네 대형서점에서 여유 있게 책을 볼 수 있었던 시대가 가끔 그리워진다. 집 앞에 있던 동양문고는 우리가 그곳을 떠나기 전에 없어졌다. 아쉬움을 달래며 마트 귀퉁이에 있는 서점을 갔지만, 대부분 문제집밖에 없어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영어를 시작하기 전 나는 그 서점에서   영어학습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찬찬히 보며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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