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 맘의 고민
피부에 염증이 생긴 막내와 병원에 갔다.
거의 다 나아가고 있었고, 너무 많이 좋아졌다는 말에 감사의 표현을 하며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의사 선생님께 친근감이 느껴져서인지 진료 마지막에 필요 없는 질문을 하고 말았다.
며칠 후 아이가 방문할 곳이 있는데 가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실 알아서 조심하면 될 일이어서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가 미리 걱정하면서 신경을 쓰고 복잡하게 생각하니 아이가 스트레스로 아픈 거라면서 다시 안 좋아지면 다시 오면 된다고 자기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며 약간 구겨진 얼굴로 말을 하였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리 기분이 나쁘지?
병원을 나와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내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나 하는 섭섭한 생각에서부터 스스로를 향한 부정적인 생각도 이어졌다.
진짜 걱정만 하면서 아이를 힘들게 했나?
그동안 혹시 예민하고 복잡하게 생각해왔나?
과연 이런 엄마가 아이의 홈스쿨을 잘 이끌어줄 수 있을까?
짧은 순간 나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잠깐이었지만 혼란스러웠다.
그 잠깐이 지난 후 나는 정신을 차렸다.
진료시간이 짧으니 빨리 질문을 마치기 위해서는 앞뒤 생략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의사 선생님도 단지 진료에 필요한 몇 마디만 주고받은 상태에서 답을 했으니 굳이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이 다소 편해졌지만 별 뜻 없는 다른 사람의 말로 왜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빠지며 무너져야 했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우선 나의 아이와 함께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홈스쿨을 한다면서 엄마의 교육관 운운하며 잘난 척 제대로 했는데 아이 앞에서 요란한 빈 수레 엄마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아이가 스트레스로 염증이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에 혹시 홈스쿨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아이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스스로 제 발이 저린 묘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괜한 도전이 아이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고 홈스쿨에 대한 회의감도 들고 마음이 뒤숭숭했다.
세 번째, 나이가 들다 보니 가끔 행복한 삶을 위한 책들을 읽게 된다.
그 책들은 생각을 걸러내면 행복이 남는다고 생각을 그만하기를 권하기도 하고, 누군가 말하는 것을 기왕이면 생각의 각도를 바꾸어 좋게 해석해서 행복해지라는 권고들을 해주고 있었다.
그 책들을 읽을 때마다 이해는 가지만 실천은 잘 안 되는 것을 경험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나의 것이 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의사의 말을 듣고 또 한 번 생각을 걸러내지 못하고 생각의 각도를 바꾸지 못한 것 같아 다시 한번 나의 행복 의지에 실망했다.
네 번째는 전문성에 대한 존경심을 가득 가지고 있는 환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가르치듯이 말하는 의사 선생님의 태도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고 공감도 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 의사 선생님이 뜬금없이 나의 질문을 새롭게 해석하는 모습에서 혹시 나보다 더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아픈 일이 있지 않을까 오히려 염려되는 마음이 뒤늦게 들었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정말로 ‘내가 나를 잘 모를 수 도 있다’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 의사의 말대로 내가 진정으로 걱정도 많고 복잡한 사람이라면 함께 홈스쿨을 하는 우리 아이도 힘들 것 같았다. 과연 내가 한 아이의 학교를 만들어 줄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며 새삼스럽게 고민의 꼬트리가 만들어졌다.
결국 의사의 한마디가 홈스쿨 엄마의 마음속 꽁꽁 묶어놓았던 고민들을 바깥세상으로 불렀던 것이다.
밖에 나온 고민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수습하기 어렵게 몰고 가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홈스쿨을 하면서 해결하지 못한 마음속 고민들은 방치되어 있었다.
마음속의 것을 가끔 한 번씩 꺼내서 살피고 고치고 받아들이는 일을 게을리하고 순간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아이에게 대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홈스쿨 관련된 책을 보아도 그 멋진 내용들을 몸과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느껴지는 대로 홈스쿨을 진행하려 했다.
이론과 실천, 생각과 현실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왜곡하여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해결되겠지 아니면 학교 다니는 다른 아이들은 더 심할 텐데 하며 홈스쿨을 교육의 다른 대안으로 보기보다 단지 학교교육과 비교를 하기 바빴다.
결국 홈스쿨을 하려는 철학과 가치의 뿌리가 약하니 고민들이 작은 비난에도 툭 튀어나와 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홈스쿨 전문가도 아니고, 나이도 많아 활동성도 떨어지고, 나름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아이의 결과물은 보이지 않고, 대안학교에 대한 경험도 많지 않으니 나는 총체적 문제를 가진 홈스쿨맘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성향까지 더해지니 '과연 홈스쿨을 하는 것이 맞는지?' 하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해보는 상황으로 쉽게 치닫고 있었다.
자격미달이라고 생각하는 엄마가 한없이 자기 비하에 시달리고 있는데 홈스쿨 하는 바로 그 막내가 커다란 소리를 내는 청소기를 돌리며 앞을 지나간다.
엄마의 고민도 모르면서 자신은 해맑게 음악을 들으면서 춤을 추듯이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고 바닥에 있는 강아지 끙가를 치우거나 강아지들 돌보기를 한다.
돌보는 건지 같이 노는 건지 모르지만 서로 싸우고 공도 던지니 청소한 곳에 다시 강아지 털이 날린다.
어쩌면 홈스쿨을 하면서 내가 할 일은 이런 것을 보고 군소리 안 하기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말없이 지원하기, 아이와 함께 일하기와 놀기. 그리고, 함께 공부하기 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억지로 채워 넣기보다 이리도 단순한 생활 속에서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고 커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염없이 무너지는 동안 아이는 나에게 새로운 것을 자꾸자꾸 가르쳐준다.
늦둥이 막내와 홈스쿨을 하면서 정말이지 나는 늦은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의사가 말한 것처럼
내가 읽은 행복 책들이 권하는 것처럼
생각을 많이 하거나 복잡하게 고민만 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때로는 단순하게 살아가는 일을
진짜로 실천해 보아야겠다고 결심해본다.
그것이 홈스쿨맘의 고민을 해결하는 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