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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이랑 Jun 13. 2022

마음을 모으는 일

홈스쿨 하는 아이

인터넷에서 산 반짇고리가 도착했다.

내 것이 아니고 아이들 것이다.      

아이들은 열심히 상의를 해서 산 반짇고리 세트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케이스를 열어보니 알록달록한 실과 다양한 바느질을 위한 도구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둘째는 바느질에 관심이 없으니 아마 단순한 옷 수선을 위해서 구입했을 것 같다.

하지만, 바느질 마니아인 막내는 새 반짇고리를 보는 순간 눈이 동그래지며 빛이 난다.

아 행복한 표정이 바로 저 표정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며 아이의 득템을 축하했다.     


막내는 온 마음을 모아 바느질하는 것을 좋아한다.

바느질뿐 아니라 손으로 만들고 조작하여 완성하기를 즐긴다.

강철이나 플라스틱 같은 딱딱한 재질보다는 주로 종이나 신문지, 천이나 실처럼 구하기 쉽고 부드러운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방안에는 항상 낡은 양말이나 작아진 옷과 같 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언젠가 구부정하게 앉아 바느질로 인형을 만드는 모습이 안쓰러워 가정용 미싱을 사주었다.

인형 만들기가 좀 더 수월해졌다고 좋아하더니 어느덧 다시 꾸깃 꾸깃 앉아 실을 손에 쥐고 손으로 인형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바늘로 꿰매고 있다.

결국 며칠이나 걸려 그렇게 머리카락을 이식받은 인형은 수북한 무명실 머리카락을 지니게 되었다.  


언젠가는 미니어처처럼 작은 걱정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나무 조각으로 만든 작은 인형이었지만 옷도 입혀주고 눈코 입도 그려주니 작지만 마음속 큰 걱정거리를 내려놓는 친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아이가 모처럼 기간제 교사로 나가는 나에게 그 작은 걱정인형을 선물로 주었다.

그 인형은 가방에서 나의 걱정거리를 없애주기 위해 함께 학교로 출근했다.

그리고, 다사다난한 교실에서 나의 작은 수호신이 되어주었다.     


9살 무렵에 만든 깡통 인형도 있었다.  빈 깡통을 모아 관절을 종이로 만들어 흔들흔들 춤출 수 있는  인형이었다. 그 커다란 깡통 인형은 덩치 때문에 집안에서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벽에 못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눈이 오는 날 뒷마당에 나간 이후 막내의 작아진 옷과 신발을 신고 나뭇가지를 의지한 채 눈사람들과 뒷마당을 지키게 되었다.

           

깡통 인형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양말로 만든 가오나시 인형도 있었다. 그 양말인형은 큰언니의 유학시절 기숙사 방에서 무사히 학업을 마치도록 지켜주다가 이제는 자취방에서 큰아이의 회사생활을 응원해주고 있다.     


인형 만들기가 시들해질 때면 종이 씨앗을 만들기 위해 신문지로 재생종이를 직접 만드는 번거로운 작업을 몇 번씩 하기도 하고, 찰흙으로 그릇을 만들기도 하면서 온갖 손을 이용한 활동에 지치지 않고 매진했다.    


그리고, 잠시 검정고시 준비로 작업이 뜸하더니 요즘 다시 손동작이 바빠졌다.

별종이로 별 접기가 한창이다.

학을 천마리 접어 친구에게 전해주는 유행을 경험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별을 천 개 접으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다소 변형된 이야기를 하며 나의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모아 종이접기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왜 그걸 하냐고.

만들어서 뭐할 거냐고.          

마음이 끌려서 하게 되고 더 잘하기 위해 마음을 모으며 열심히 하는 과정을 즐기는 아이에게 '그것 해서 뭐할래' 하며 결과를 걱정하며 시름에 찬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마음을 모으는 이를  존중하는  쿨한 부모 아니였기에 티 나지 않게 쿨한척하며 마음속 불안을 다스리는 것이 이젠 나의 과제가 되었다.


아이가 세상이 원하는 것에  마음을 모으기를 바라는 엄마는 오늘도 이렇게 인생 교과서의 마음 다스리기 단원을  배워간다.

아이의 홈스쿨 학교는 엄마를 가르치는 학교가 된 지 오래되었다.

고맙게도 시험도 안 보고 선생님이 된 것도 모르는 아이가 어른을 가르친다는 이상한 거꾸로 학교지만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매일매일 배워가며 아이와 함께 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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