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결혼기념일 날 남편과 신혼 때 이야기를 하며 옛 추억에 잠기었다.
결혼 1개월 만에 감사하게도 첫 아이를 임신했고 나는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며 아침에 남편과 함께 출근하고 저녁에는 먼저 퇴근하여 남편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회사를 다녔고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아이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 남편과 의논 끝에 임신 7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두는 결정을 했다. 그렇게 결혼 후 약 8개월 동안 맞벌이 생활을 했고 그 후로 죽 나는 육아와 가사에 전념을 하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일과 아이 둘을 키운 지 어느덧 12년이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목표로 했던 커리어 그리고 사회와는 등을 지고 집에서만 일상을 사는 내 삶에 마냥 만족했던 건 아니지만 지난 세월은 뒤로 한채 나는 현실의 내 삶에 적응을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 후 회사를 다녔던 시절을 생각하니 너무 낯설고 딴 사람 이야기하듯 느껴졌다.
"자기야, 내가 결혼하고도 회사를 다녔었다는 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나는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시간의 길이 차이가 너무 커서일까 그때 내가 직장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했던 것이 내 이야기 같지 않고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히 내 삶의 일부였고 내가 겪은 일인데도 말이다.
얼마 전 딸아이와 저녁을 먹으며 얘기할 때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내가 말을 이었다.
"엄마도 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어."
그러자 딸아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가 단정한 옷을 입고 아빠처럼 회사에 출근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어머, 너는 엄마가 평생 집에서 입는 후줄근한 옷만 입고 살았을 것 같니?"
아이는 계속 웃으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은 후 나는 컴퓨터에 저장된 내가 예전에 해외출장 다녔을 때 찍은 사진을 증거 사진으로 보여주며 당당하게 말했다. 사진 속에서는 결혼 후 출장 갔던 모습뿐 아니라 결혼 전 꿈 많던 젊은 시절 여기저기로 해외 출장을 다녔던 나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어때? 이 사람 누구야? 엄마 맞지?"
"엄마인 거 같긴 한데, 엄마 같지 않아요." 사진을 보고 있는 아이의 웃음 가득한 표정은 사진을 보기 전 보다도 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믿어지지 않았다. 저렇게 해외의 이곳저곳을 출장 다니며 활발하게 회사생활을 했던 내 모습이 내가 아닌 타인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나에게 이제 비현실이었다. 나에게 현실은 집과 아이들 그리고 결혼생활이었다.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다가 문득 반발심이 들었다.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아직 젊고 나도 꿈이 있는데 왜 마치 나는 멈춘 것 같지? 도대체 현실과 비현실의 기준이 무엇이란 말인가?
내게 활기차게 살았던 지난 과거의 시간이 비현실처럼 느껴지지만 현실이었던 것처럼 내가 꿈꾸고 내가 바라는 미래도 비현실적이겠지만 내가 현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멈춰있는 것 같은 이 현실의 시간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도록 나는 내가 꿈꾸는 미래를 현실로 만들겠어!
내가 현실 또는 비현실이라고 믿는 경험은 그것을 겪어내는 시간의 양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내가 그것이 얼마나 가능하다고 믿는지에 따른 차이도 중요한 것 같다. 지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과거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일상만이 내 현실이라고 믿기에 내가 겪은 젊은 시절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즉 현실과 비현실의 차이는 내가 가능하다고 믿느냐 가능하지 않다고 믿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남들에게는 비현실적이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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