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신 화를 내주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6월17일)
옆자리 선생님의 연민이 부담스럽다.
내가 시어머님과 산다고 하면 날 불쌍한 눈빛으로 본다.
힘들긴 하다. 그렇다고 연민을 느끼게 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구차해보일지언정 이런 생활에 대해 꼭 내 생각을 말했다.
어제 있었던 일이 있었다. 남편과 어머님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이었다. 화요일쯤 남편은 나를 부르더니 상의할 게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계속 나도 용돈을 못드리는것에 대한 불편감이 있었기 때문에 돈벌러 나갔는데 당연히 가족을 위해 써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최근에 무슨 영상을 보면서 가족에 대해 더 애틋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찰나겠지만 말씀을 보면서도 뭐 당연한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쓰는걸 인색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특히 부모에게 지금 못쓰면 나중에도 절대 못쓸것 같았다. 내가 나를 못 믿는것이었다.
그런데 용돈얘기를 남편이 하니 마음이 통했네 싶었다.
그리고 다음 수요일에 나에게 어머님 드리라고 용돈봉투를 주었다. 그리고 나는 목요일에 어머님께 용돈을 드리러 방에 들어갔다. 사실 어머님이 고생하신거에 비하면 내 용돈이 너무 얼마 되지 않아 민망하긴 했다.그래서..
<어머니, 얼마되지 않는데 이거 쓰세요~>
그러자 어머님이
<아니 무슨 가족끼리 이런걸 주냐. 내자식 내가 보는데.. 정은이가 뭐라고 했다고 이런걸 주냐~>
하시는거다.
순간 무슨말인가 싶어 <아가씨가 뭐라 했어요?>
그러자, 우리 어머님은 경솔하게 <기름값도 안주냐고 너네 아범한테 뭐라고 했나 보던데>라고 하신다.
그때부터 화가 났다. 남편은 엄청 어머님을 생각하는척하더니 결국 아가씨 등쌀에 못이겨 이러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어머님 뿐만 아니라 친정까지 들먹이며 친정도 챙기자는 것이 영 이상하다 여겼는데 이런 이유였나 싶어서 순간 화가 났고, 톡으로 <아가씨가 용돈가지고 뭐라고 했어?>라고 물어봤다.
때마침, 신랑이 전화를 받으면서 들어왔고 남편이 식사중일때 <좀이따 나랑 얘기 좀 하자>하니 정말 지친 기색으로 <지금 얘기해 그렇게 말하면 밥도 안넘어가> 그러자, 말하기가 싫어졌다. 따지려다가 그냥 잤다.
다음날이 되었고, 이런 일들을 옆자리 선생님께 얘기했다. 그러자 옆자리 선생님은 남편이 힘들겠다며 시누이 혼나야겠다고 어디 감히 그런 말을 하냐고 그런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 화가 부담스러웠다. 왜 이상하게 내 편을 들어주는데, 부담스러웠을까?
나는 어머님이 우리네 욕인지 자신의 푸념인지를 딸에게 엄청 하는걸 안다. 그리고 난 그걸 이해한다. 스트레스 받아도 풀곳이 없으니 푸념과 하소연을 딸에게 할 것이다. 그런데 아가씨도 성격이 만만치 않아서 하소연 듣다가 어머님이랑 싸울때가 많다. 그러다 뭔가 자기 엄마가 불쌍하게 여겨지면 오빠나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루트를 이해하고, 그럴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무시.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오만함. 그런게 싫었고, 말만 떠드는 시누이 얘기가 듣기 싫었다.
그래도 자기엄마가 무언가 잘못했을때 쓴소리를 딱딱 할줄 알아서 사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편이었다. 들을때마다 마음에 못이 박히는 소리 많이 하지만, 어느정도 파악이 되기 때문에 관계를 맺어갔던것 같았다.
옆자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건 뭔가 불편했다. <나는 선생님이 어느정도 형편인지 잘 모르지만, 애기 키우느라 안그래도 힘든데 정기적으로 용돈까지 드려야하는건 더 힘들지 않아? 이건 고정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형편이 되면 해야지~ 그리고 부모님도 그런걸 바라시면 안되지~> 이 말을 듣는데 나는 굉장히 불편했다. 어느 부모가 자식한테 안 바라나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말씀을 못할 뿐 자식 용돈 받는게 최고의 기쁨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 또 간헐적 용돈이 말은 좋지만 내가 해보니 나 쓰기 바빠서 부모를 1순위로 두기보다는 나와 자식들에게 더 많이 돈이 갔다.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는 것이라고 난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선생님의 요지는 마음이 편하게, 자유롭게 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나는 그건 내가 아주 나중에 늙은 부모일때 자식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놔줄수 있는 부모가 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서의 최선은 나의 부모의 행동과 말을 마음깊이 이해하는게 나의 최선일 것 같아, 자꾸 선생님의 말이 목에 걸린 가시같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시대에 이렇게 사는게 얼마나 바보같고 어리석게 보이겠냐마는 비교도 하고싶지 않고, 헛된 이상을 꿈꾸고 싶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었다.
기왕이면 부모와 나 사이가 조금 더 오해 없이 따뜻하게 서로를 이해하며 살고 싶은 바람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