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히게 맞는 말

누가 나를 불쌍하게 보면 난 기분이 안좋을것 같은데.

by 소국

남편과 대화를 하다보면 얹힌 것처럼 고구마 백개 먹은 것 같을 때가 참 많다. 그런데 이 사람도 나랑 대화할 때 고구마 백개 먹은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한다. 이런 부부가 여지껏 10년을 같이 살았다는 게 신기하고, 더 놀라운 건 막힌 대화인데도 우리는 끝없이 말하고 싸운다. 끝은 늘 한숨뿐이지만, 그래도 10년 동안 싸움의 기술이 늘어난건지, 대화의 기술이 늘어난 건지 요령이 생긴다.


남편을 만나고 대학에 끊었던 술에 손을 다시 댔다. 본격적으로 다시 술에 손 댄건 친정아빠 병간호를 시작하면서 술에 손을 댄 것이다. 병간호가 만만찮고 정신이 괴로우니 남편은 나에게 위로한다고 술을 먹였다. 술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친정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그렇게 술 먹는걸 싫어했던 내가 남편에게 가끔 술을 함께 하자고 하기도 하고, 남편도 본인이 지치고 힘들때 나에게 한잔 하자 한다.


남편과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눴던 것 같다. 당연히 직장얘기가 빠질수 없다. 그런데 박물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얘기했다. 그런데 말끝마다 내가 <불쌍하다>라는 표현을 했나보다. 나도 모르게.


그랬더니 남편이 <그런데 누가 나를 불쌍하게 봐서 나에게 잘해준다면 난 싫을것 같은데?>라고 한다.


나는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 내가 관계를 맺을때, 상대를 내 아랫사람으로 본건가. 교회에서 긍휼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품는다.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자동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남편 말을 듣고보니 굉장히 건방지다. 누가 누굴 불쌍히 여기고, 누가 누굴 품는다는 건가.


그이후에 이 대화가 마음에 남아서 남편에게 차안에서 물어봤다. <오빠, 근데 저번에 했던 말이 마음에 남는데,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서 뭔가 잘해주면 그건 아닌것 같다고..> 그러면서 뒤이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대하듯, 뭔가를 베풀듯 말하는것 같더라고. 이거 진짜 잘못된 생각 같았어. 하나님이니까 나를 품는건데, 뭔가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마냥 윗자리 선점하는 느낌?> 줄줄 얘기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렇지. 나라면 동등한 입장에서 대우를 받고 싶지. 뭔가 불쌍해서 잘해주는 대우는 안받고 싶을 것 같아> 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나에게 제일 어려운 <존중>을 얘기하는 것 같다. 우리가 대부분 하는 농담이 남을 비하하거나 조롱거리 삼는 듯한 것들이 많다. 웃기는 하지만, 가끔 현타올때가 있다. 뭐하는건가. 존중을 하면서 웃을수는 없는건가. 생각이 다름을 인정할수 없는건가.


어느 정도 박물관 분위기 파악 다하고 있는 내가, 위로를 건네는 말들이 정말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되지 않은건, 결국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친 위로 하지말자. 거만하고 불편하다. 그저 마음과 생각을 존중하면 그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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