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필터링을 잘해야 마음을 지킨다.(2022.9.9)

명절, 가족모임을 늘 조심하는 이유

by 소국

둔하디 둔한 남편은 그냥 자기 몸이 힘들면 납득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 맞장구를 쳐주다가도 그냥 나자빠진다. 이 표현이 딱 맞다. <나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냥 네가 좋아하니까 맞춰준다.>는 태도로 일관하다가 자기 몸이 힘들거나 아니면 상대가 뭔가 더 요구할때 말과 행동이 확 기분 나쁜 표시를 낸다.


나는 이 지점이 맘에 들지 않는다. 뭐 맨날 내 감정을 숨기며 살라는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자기가 마음을 <나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이라는 태도로 접근을 하니, 상대도 다 느끼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네 마음이 어떻든 그건 네 마음의 문제다.>라는게 내 입장이다. 매사 내가 마음이 편한대로 일이 흘러가면 좋겠지만, 인생 별로 그런 일 없다. 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다반사다. 눈앞에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내 마음의 상태가 감정이 1도 들어가지 않았을때 얘기를 꺼내야하는것 아닌가 싶었다.


명절 시작전, 소통의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추석 전날은 우리 어머님의 생신이다. <그래. 1년에 한번이니 잘해드려야지> 하다가도 일주일 내내 일하느라 지친 몸뚱이가 움직이지 않아 <그냥 사먹어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미 두마음이 갈팡질팡. 즐거운 마음이 사라졌다. 그러니 말이 곱게 나갈리 없다. 사실 탓을 좀 해보자면 시누가 먼저 어머님 생신에 대해 이러자저러자 말을 꺼내며 상의 아닌 통보를 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마음이 상한 것이다.


진짜 매번 느끼지만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다. 말투. 제스쳐. 행동 하나하나에서 모든걸 느낀다. 그러니 늘 조심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신뢰는 쌓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신뢰가 무너지는데는 정말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불평. 불만이 쏟아졌다. 장보러 가는 길 내내 남편과 딥대화를 나눴다. 남편의 반응이 더 열받는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어머님한테 얘기하자는 것이다. <우리도 힘들다고. 억지스러운 명절음식 하지말자고.> 훌륭한 남편님이다 정말. 평생을 함께 살아도 자기 엄마 마음을 쥐뿔도 모른다. 어머님은 사실 우리들이 일하는 걸 알기에 나름 배려해주신다고 소소한 것 외에 명절 전에 큰 일들은 해놓으셨다. 좋은 깨를 준비해놓고, 좋은 참기름과 들기름을 준비해놓고, 쌀가루를 만들어놓고 등등 말이다.


사실, 나도 남편의 말을 이해한다. 그래도 어머님이 60년 해오신 일과 정성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결혼 초에는 철이 없어서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었다. <어머님 힘든데 좀 줄이면 안되요?> <힘들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나이가 드니 이제는 그런 말이 쉽지 않다. 복합적이다. 기뻐하시면서도 괴로워보이시고 또 한편 음식을 해놓으면 좋으시면서도 우리 눈치도 보이시고, 음식이나 하면서 함께 얘기나누는 것도 좋으시고.뭐 여러가지 마음이 섞인 명절 음식인듯 했다.


타인과 대화할때 가장 경계해야하는건 그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나에게 아주 깊이 박히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특히, 가까울수록 더욱 조심해야한다. 내 마음을 잘 지켜야 내 생각과 마음을 정확히 표현이 가능하고, 감정적으로 치우친 대화가 아니라 상대의 의도나 생각의 핵심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것 같다.


가족들간의 대화가 조심스러우면서도 중요한 이유이다.


어제와 오늘 2일동안 엌 문턱을 왔다갔다 하며, 생각보다 남편이 너무 잘 도와주었다. 딥대화의 결과인지. 아님 남편도 나처럼 세월이 흘러서 뭔가 철이 들어가는건지. 그리고 생각보다 어머님이 <옌장> 이라는 욕을 몇번 안했다. 가만보니 그렇다. 나도 너무 힘들었고, 남편도 힘들었고, 어머님도 힘들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맞추려고 엄청 노력한 2일 같다. 서로가 마음이 많이 상하지 않고 나름 웃으며 추석을 맞이하는 것 같아 감사하다.


남의 집 손주얘기부터 온갖 친척들 얘기가 음식 만드는 내내 어머님 입에서 줄줄 나온다. 나는 이 모든 말들을 영단어 흘려듣기처럼 흘러듣기로 작정했다. 사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내 마음이 지옥 같았다. 일을 시작하면 하이텐션이 되시고, 지시적으로 되시고, 모터를 단 것처럼 서두르시니 나는 감당하기가 매번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려고 2일을 되돌아보니 나의 대처능력도 상승하고, 어머님과 신랑도 서로가 맞추려고 애썼구나가 느껴진다. 마음을 맞춰가는 건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데, 이렇게 글만 써도 보이는게 신기하다.


나만 힘든게 아니라 오늘 모두가 고생했구나를 알게되니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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