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웠다.(2022.09.29)

요근래 며칠간의 기록

by 소국

지난 금요일부터 나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늘밤에도 쇼핑사이트를 뒤져서 양심상 내옷은 사지 못하고, 아이들 것 먼저 사준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고 쉽게 잠들지 못했다.


지난 금요일부터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목요일에 업무가 몰아치기 시작하니 정신을 못차리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옆자리 선생님과 주거니 받거니 했다. 26일 월요일에 있을 문화재 답사 얘기중이었다. 업무가 왜 이렇게 버겁게 느껴졌을까. 그와중에 옆자리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선생님, 월요일에 가지?>

<안가도 되요?>


이렇게 받아치며 웃어넘기는데, 갑자기 앞에 선생님이 날벼락처럼 말씀하신다. <선생님, 가기싫으면 안가셔도 되요!> 말은 배려하는듯 하지만 엄청나게 단호한 말투로 말씀하신다. 순간 분위기가 얼음장이 되고 농담을 주고받던 선생님이 <선생님 에이 왜그래 농담이잖아~> 했다. 그때부터 내가 뭘 잘못했는지 뇌를 풀가동 시켜보았다. 혼자 내린 결론은 나이 많은 선생님이 담당하시는 행사에 대해 빠져도 되냐는 둥 이런식의 농담이 언짢으셨던 것이다. 이걸 기획하고 담당하느라 잠도 못자고 애썼는데, 나이도 한참 어린게 그렇게 말하니 오죽 짜증이 날까 싶어 얼른 사과를 드렸다. 그저 농담이었고 언짢으셨다면 죄송하다고.


그렇지만 썩 내 기분도 좋진 않았다. 말한마디 잘못했다가 무안을 당한꼴이라 안그래도 박물관 내에서 눈치보고 사는데 그렇게 서러울수가 없었다. 목요일은 그렇게 대충 넘어갔으나 금요일이 문제였다.


이미 사과도 했으니 풀릴 법한데, 내 마음도 어째 영 탐탁찮고 상대 선생님은 월요일 행사준비로 여전히 긴장 맥스다. 하. 숨통이 조여온다. 그때부터 아랫배가 사정없이 아프고, 한숨이 나도 모르게 계속 나왔다. 그러자 생전 참견도 안하시던 나의 선임선생님이 <산책 좀 하고와요.><마음을 좀 잘 다스려봐><마음이 힘들땐 예수님이 옆에 계시다고 생각해봐>등등 갑자기 안하시던 말씀을 사무실에 단둘이 남겨되었을때 그것도 파티션 너머로 나지막히 얘기하신다. 그날 아침, 나는 분명히 큐티도 했었다. 지금이야 뭔 말씀을 읽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그때는 분명 또렷이 기억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 얘기가 나오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 한걸 겨우 참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바깥에 비가 갑자기 엄청 내렸다. 박물관 밖은 축제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비나 왕창 내려라> 했다. 그러자 지나가던 나의 멘토선생님이 기가 찬다듯이 웃고는 몇마디 하셨다.


박물관의 돌아가는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내 업무임에도 더이상의 권한이 없어서 뭔가 추진도 못하는 슬픔이 내 안에 가득찼던 것 같다. 한없이 내려앉는 기분일때, 말한마디 잘못했다가 더 분위기가 싸해진것이다.


이후, 26일 월요일이 되었다. 대망의 월요일.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 대하는게 어색할거라고 걱정하며 갔는데, 일을 하다보니 안쓰러웠다. 그리고는 일을 하면서 나도 열심으로 돕고 담당자도 열심으로 뛰어다녔다. 행사가 마치고는 담당자의 얼굴에 여유가 생겼고, 이제는 말도 편하게 하셨다.


행사 이후 다음날 즐겁게 일하고 싶었는데, 사무실에 문제가 생겼다. 실장님이 고충처리반에 차장님을 고발하시겠다고 학예직 직원들에게 얘기하신 것이다. 평소 차장님의 태도로 인해 실장님은 정신적인 피해를 많이 보셨다. 적어도 제3자인 내가 보기엔 그렇다. 공공기관이 박물관에 여러가지 기관 협조를 원할때가 종종 있다. 기관 협조는 박물관 입장에서 중요한 사안이고, 박물관 이미지나 홍보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데, 차장님은 이런걸 그저 가볍게 여기시고 실장님께 보고없이 자기 선에서 결정내리신다. 나는 이런 태도도 잘못되었고, 물관 전체를 보고 내린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본인에게 허락받지 않고 박물관 장소협조를 했다고 실장님에게 몇번 소리를 지르셨다. 그런데 나는 이런 분위기가 적응이 안됐다. 왜 소리를 치는지. 그리고 이런걸 실장님은 어떻게 참지? 하며 이런걸 감내하며 직장생활하는게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실장님의 고발사유가 너무나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실장님이 차장님께 보고를 해야하는게 아니라, 차장님이 실장님께 보고를 해야한다. 장소협조에 대한 사안은 실장님이 그전에도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반대하셨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회의이후, 점심먹고 산책을 하며 나이가 많으신 학예사 선생님이 더 나이가 많으신 학예사 선생님을 모시고 얘기를 나눴다. 평소 차장님은 어떤 분이시냐고. 옆자리에 앉으시니 잘 알지 않느냐고. 우리 박물관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으시고 경력도 많으신 여자선생님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다. 변태라고. 나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변태라는 말이 성적인 의미인가 싶어 자세히 들어보니, 차장님의 노골적인 성적인 농담을 이 선생님이 그동안 참아오셨던것이다. 친하니까 농담을 했는데, 점점 갈수록 수위가 올라갔고, 실제로 성적인 행동을 저질렀는지 아닌지도 알수없는 말을 이 여자선생님께 지속적으로 해온것이다. 선생님은 그 말을 들으며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여자를 변기라고 생각한다><나는 오늘도 강남에 간다>등의 발언이 저건 미친놈이 아닌가 생각하게 하고, 실장님한테 소리를 지를땐 분노조절장애인가 싶었다.


이 말을 듣고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입사한지 3달 된 학예사선생님도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했다.동료를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경계심을 바짝 세우고 일을 해야하니, 정신적으로 지치는 수밖에 없다. 박물관의 고상함의 이면에는 더럽고 추악한 현실만 있는 것 같았다. 피터지고 싸우는 전쟁터 같은 현실만 있다. 나는 날마다 전쟁터에 출근하는 기분이다. 전시를 앞두고 몰아치는 업무와 속속이 드러나는 개인의 인격이 하나의 태풍처럼 나에게 몰려드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어떻게 행동할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괴로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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