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정이 상해서 일을 못하겠다

말의 뉘앙스가 중요한 이유

by 소국

나는 지금 사무실을 박차고 퇴근했다. 이유는 우리 학예사 선생님 한분과 계속적으로 뭔가 감정적인 앙금이 남아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도, 쉽게 수긍이 되지 않고, 업무지시를 다그치는 태도에 화가 났다.


지금 현재 우리 박물관이 준비중인 전시를 관장님이 전부 준비하고 계신다. 역사 전공자가 주제를 풀어야 하는데, 역사 전공자가 신입 2명뿐이어서 관장님이 직접 전시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이건 전해들은 바인데, 은연중에 그런 뉘앙스를 풍겼으니 학예사 선생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이 학예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마셨다.


<나는 관장님이 전시를 이끌어주시는게 맞다고 생각이 든다. 전시기획력은 관장님께 보고 배울 점이 많다. 인격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기획력, 필력등은 업무적으로 평가할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등등 관장님에 대해 굉장히 높이 평가하시면 <우리 학예직에 비전공자한테 어떻게 전시를 맡기겠나. 주제가 자꾸 산으로 가니까 관장님이 못맡기는것 아니냐. 주제에 대해 잘 풀수만 있다면 괜찮을텐데 스토리가 잘 나오지 않으니 관장님이 총대를 매신것 같다. 이번 전시때는 중요한 분들도 오신다니 더 잘하고 싶지 않겠냐. 전시는 죽이되든 밥이 되든 나오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라 죽이 되면 안된다. 박물관의 얼굴에 먹칠하는거다> 끝도 없이 주장이 펼쳐졌다.


들으면서 이미 이 선생님 안에는 학예직을 향한 평가가 이루어졌구나. 그렇지만 나는 학예직 선생님들의 노고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 선생님 말에 100%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듣기 불편하고 오히려 목에 가시가 걸린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사무실에서 터졌다.


내가 강당에서 박물관 홍보를 하고 있을때였다.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오시더니 <지금 전시기념품 발주 넣으려고 하는데 관장님이 예산 있냐고 물어보셔서요. 선생님 예산 있어요?> 나는 당장 홍보하려고 강당 앞쪽에 서있는데 자꾸 물어보신다. 그러더니 예산이 있어야 발주를 넣는데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황당하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내가 홍보하는 그모습을 보고 뒤돌아가시면서 <이 사업은 우리 사업 아닌거 아시죠>하신다.


사무실로 돌아가 당황스러운 마음 가다듬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전시 기념품 예산은 200만원이다. 그런데 관장님이 추가로 기념품 제작을 더 원하셔서 200만원을 더 끌어 쓴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새로운 기념품을 말씀하셔서 예산항목을 보고 예산을 빼야한다.> 조목조목 말씀드리고, 선임선생님께 보고도 드린후, 발주를 넣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따지는 투로 <선생님이 이번주에 발주 넣어야 한다고 해서 내가 한건데 예산이 없으면 어떻게 해?>이런다. 사실 나는 관장님께 화가 났다. 관장님이 자꾸 중간에 의견을 바꾸시니 아래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것이고 이렇게 난리를 치면서 하는건데. 왜 우리끼리 싸워야 하는지. 전시 잘되는것도 좋지만 이러다가 영영 안보고 싶을 것 같았다. 이 사안에 대해서도 선임선생님이 알려주셨지만, 다른선생님들이 관장님의 의견을 덧붙여 얘기해주셔서 정확한 의도를 알수있었고, 나는 전달받은 내용을 잘 처리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역으로 이 선생님이 관장님이 원하시는 업체가 있다면서 자기가 말해주겠다고 해서 이 사단이 난것이다. 뭐 내가 알아볼 겨를도 없이 관장님과 그 선생님 간에 얘기가 다 되었고, 서두르면서 나는 생각 없는 애로 치부가 된것이다.


살짝 열이 받아서 선임선생님과 캇톡도 하고, 전화 통화를 한뒤 그 선생님께 조목조목 말씀드렸다. 업무가 잘 마무리되었는데 자꾸 이 선생님이 <내가 성격이 급하다>느니, <박물관 밖의 사람들은 내가 여기에서 왕따인줄 안다>느니 그런다. 말을 계속 듣다가 나도 짜증이 나서 <인정을 안받고 말지>라고 말대꾸를 했다.


순간 분위기 정적.


아씨 짜증이 났다. 박물관의 대의를 위해 내가 이렇게 서두른다. 일에 착오가 생기면 안되지 않느냐. 뭐 온갖 명분을 다 갖다대길래 나도 짜증이 나서 한 말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것이다. 대의는 무슨 대의인가 싶다. 전시만 박물관 사업이고 나머지 일은 개뼈다귀로 아는지. 지금 교육이며 홍보며 서류상 해내야 할 업무들은 차순위로 생각하시는것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하는 업무만 최고 중요하다는 것처럼 들려서 아니꼬왔나보다.


사과는 했다. <선생님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전시는 모두가 잘 되길 바라고 업체문제는 그 업체가 꼭 아니어도 다른 업체에 맡겨도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기관에 맞춰줄수 있는 업체를 찾아보면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빈정이 상한다. 누가 누굴 무시하고 있는건가. 학예직 선생님들이 관장님이건 그 선생님이건을 왕따시키는게 아니라 관장님과 그 선생님이 우리를 무시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더이상의 사과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사업의 중요성을 따지기 이전에 사람 대 사람 간의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예의가 없다. 막무가내로 일 진행시키고 나중이 불안하니 돈은 있냐는 식. 뭐하는건지. 함께 견디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지. 왜 자꾸 앞서가는지 모르겠다. 한 식구라고 하면서 엄청 분리지어 생각하는건 관장님이나 그 선생님이 아닌가 싶다.


더이상 아무말도 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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